다뉴브의 진주라 불리는 부다페스트
1·2차 세계대전 겪으며 도시 황폐화
지속적 복원노력으로 옛모습 되찾아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전통요리 굴라쉬 등 미식으로도 유명

▲ 박철민 울산시 국제관계대사 전 주헝가리 포르투갈 대사

얼마 전 친구가 여름휴가때 가족여행 코스로 헝가리를 염두에 두고있다며 궁금한 사항을 이것저것 물어왔다. 울산시 국제관계대사로 부임하기 직전까지 주헝가리 대사로 근무했었기에, 아직도 생생한 기억과 추억을 담아 정성껏 설명해 주었다. 헝가리 사람들은 역사가 천년이 넘고, 정통 기독교 국가로서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고수하고 있다는 데 자부심이 남다르다.

지구상에서 야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다뉴브의 진주’ 부다페스트는 1873년 이전까지만 해도 부다, 페스트, 그리고 오부다(올드 부다) 등 세 개의 행정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남북으로 흐르는 다뉴브 강을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는 왕궁과 귀족들의 거주지였던 부다와 로마시대부터 중세시절 도심이었던 오부다가 있다. 강 동쪽으로는 신흥귀족들과 중상공인들이 살았던 상업지역 페스트가 있다. 부다페스트는 ‘스파 수도(spa capital)’로 불릴 정도로 온천이 많은데, 세체니 온천과 갤레르트 온천은 웬만한 한국 관광객들이라면 한 번쯤 방문했을 터이다. 필자도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코로나 사정으로 미루다가 결국 경험하지 못해 아쉽다.

▲ 갤레르트 언덕에서 내려다본 부다페스트 전경.
▲ 갤레르트 언덕에서 내려다본 부다페스트 전경.

부다는 라틴말로 물을 뜻하는 ‘voda’에서 유래했고, 페스트는 온천물이 많이 발견된 겔레르트 언덕에 소재한 수많은 동굴을 의미한다. 온천은 목욕뿐만 아니라 약으로도 음용되는데, 최음제 성분이 많다고 알려진 영웅광장 인근의 동물원 하마들은 다산을 한다고 한다. 오헝제국의 일원으로서, 합스부르크 왕가와 함께 1867년 이중왕국 출범 때부터 1차 대전 패망 시까지 중동부 유럽의 맹주였다. 1차대전 패배의 결과인 트리아농 강화조약에 따라 인구와 영토의 2/3를 상실했고, 실지(lost land)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2차대전 때는 독일 등 주축국 편에 가담했다가 더욱 참담한 결과를 맛보았다.

종전 직전 연합군으로 선회하려다 이를 간파한 독일이 주력부대를 부다페스트에 진주시켜, 헝가리 거주 유대인들은 뒤늦게 실로 혹독한 탄압을 당했고, 부다페스트 전역은 최전방 전쟁터가 되었다. 연합군과 소련군의 계속된 공습과 치열했던 시가전으로 철저하게 파괴되었지만, 헝가리 정부의 지속적인 복원 노력으로 19세기 후반 세계 4대 도시 중 하나였던 백 년 전 부다페스트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 부다페스트 야경.
▲ 부다페스트 야경.

부다페스트 건물들은 최대 5~6층 높이로 단아하면서도 화려하며 예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도입된 법 규정에 따라 부다페스트 내 모든 건물은 96m를 넘을 수 없고, 또 건축비의 20% 이상을 건물 외관의 장식과 치장에 사용해야 했다. 한때 합스부르크 왕가와 영국 왕실에서 즐겨 사용했던 헤렌드(Herend) 도자기 못지않게 헝가리인들의 자랑거리인 졸러이(Zsolnay) 도자기 타일로 알록달록하게 장식된 옛 건물들의 지붕을 보면서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부다페스트를 걷다 보면 라틴어 숫자로 쓰인 건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비엔나 문 광장의 니콜라쉬 탑 아래에는 ‘ANNO-MCCCCLXXXVI(1486)-SALV’가, 또 대통령 집무실인 산도르 궁 전면에는 ‘MDCCCVI(1806)’라고 건물의 준공 연도가 적혀 있다. M은 천년, C는 100년, X는 10년, V는 5년, I는 1년을 뜻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D가 500 그리고 L이 50인 줄은 그제서야 알았다.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도 16명에 이른다. 평화상을 제외하고 모든 분야에서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원자탄과 수소폭탄 전문가로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존 폰 노이만도,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텔러도 헝가리 사람들이다.

한때 미국의 과학계 일각에서는 “지구상에는 두 종류의 인종들이 살고 있다. 헝가리 사람들, 아니면 그냥 평범한 인간들”이라는 우스개 얘기가 떠돌았다고 한다. 희대의 드라큘라도 루마니아가 아닌 헝가리 태생이다. 드라큘라는 dragon(용)을 뜻하는 ‘draco’에서 기원을 두고 있고, 15세기 헝가리의 지역 호족인 블러드 테페쉬가 포로로 잡은 오스만투르크 군인들을 산채로 창에 꽂은 채 흐르는 피를 보면서 식사를 즐겼다는 일화가 동유럽의 흡혈귀 전설과 연계되어, 아일랜드의 작가 브람 스토커에 의해 소설로 태어났다고 한다.

부다페스트를 여행하면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의 다리와 동상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오헝 제국의 황후이면서 헝가리의 왕비인 그녀는 헝가리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고, 600년이 넘는 합스부르크 왕가 전체를 통해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벌레인 남편 프란츠 조제프 황제와 부부 금실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 친 이모이기도 한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극히 좋지 못했다고 한다. 왕비는 부다페스트에서 멀지 않는 거덜러 왕궁에 머물면서 그 넓은 정원에 보라색 꽃들을 가득 심었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시어머니가 제일 싫어하는 색깔이 보라색 이었단다. 못 오게 하려고…‘Sisi(시시)’라는 애칭을 가진 엘리자베스 황후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특유한 정략결혼을 거부하며 루돌프 왕자가 자살하자, 그 후 죽는 날까지 검정색 옷만 고집하며 입고 다녔는데, 60살을 막 넘은 시점에 괴한에게 살해당했으니 실로 비운의 여성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Gloomy Sunday’의 무대였던 곳으로 알려진 ‘군델(Gundel)’식당에 들러 전통요리 굴라쉬와 디저트 와인의 제왕으로 알려진 토카이 와인을 한잔 가득 마셔보아야 한다. 살짝 위통을 느낄 때는 조제프 2세 황제가 “바로 이것이야. 특별해!(Das ist ein Unicum!)”라고 해서 유명해진 전통 약제술인 ‘우니쿰’도 마셔야 하고. 이래저래 부다도 페스트도 천하일색 미색으로 보이리라.

박철민 울산시 국제관계대사 전 주헝가리 포르투갈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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