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경 천상고등학교 교사

지난주 최승호의 <누에>라는 작품을 수업하다가 ‘스스로 깨는 알’과 관련해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언급하고 교실을 나오는데 학생 한 명이 따라 나온다. “선생님, 궁금한 게 있어요. 소위 ‘고전’이라고 하는 작품들을 저도 읽어보고 싶어서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등 책을 읽었는데, 솔직히 이게 왜 명작인지 잘 모르겠어요. 저의 읽기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자신의 독서 방법과 태도를 고민하는 반가운 질문에,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우리 몇 명이 모여, 두세 권만 함께 읽어볼까?” 이렇게 학생들과 독서 모임을 꾸리게 되었다.

나의 교직 생활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게 ‘독서 모임’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 모임은 20년이 넘도록 왕성하게 운영되는 ‘독도랑’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현직, 퇴직 국어 선생님들의 모임으로 매년 독서 주제를 정해서 격주로 책 모임을 한다. 오랜 기간 좋은 사람들과 다채로운 방식으로 책을 읽고 나눈 대화들은 교사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의 자양분이 되었다.

최근 결성한 독서 모임은 ‘고고 독서’이다. ‘고고(GO高)’라는 모임명은 책 모임의 리더 박 선생님이 지은 것으로, 미셜 오바마의 연설 중 ‘품위(高) 있게 가자(GO)’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섯 명이 단출하게 모여 한 달에 한 번, 한 명씩 추천한 책을, 우선 다섯 번만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속하고 시작했다. 소박하게 시작한 이 모임에서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만나게 되었다. 책을 덮고 ‘아름답다’는 말이 계속 맴돌았던 책. 20여 년 전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이후 쉽게 만나지 못했던 아름다운 책 클레어 키건의 소설들. ‘고고(GO高)’ 두 번째 책 모임에서 얻은 선물이다.

독서는 ‘혼자 읽기’에 책 대화를 나누는 ‘함께 읽기’가 적절히 더해지면 그 즐거움이 배가 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함께 읽는 ‘책 친구’를 잘 만나는 일이다. 좋은 책 친구를 만나면, 혼자 읽는 순간에도 함께 나눌 이야기를 기대하며 더 흥미롭게 책에 몰입할 수 있다.

아직 좋은 ‘책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면, ‘고고(GO高)’ 형태의 단기 책 모임으로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소수의 인원이 모여, 두세 권만 독서 모임을 약속하고 진행해 보는 것이다. 좋은 책 친구는 ‘책 대화’를 직접 나눠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책 모임에서 어떤 책을 읽을지 고르는 순간부터, 약속한 책을 성실하게 읽는 태도와 읽은 후의 반응 등을 몇 번 공유해야만 알 수 있다. 단기 책 모임이 끝나고도 지속 가능한 책 모임이라고 생각되면, 책으로 우정을 나누는 ‘지란지교’를 마음껏 누리면 되는 것이다.

이혜경 천상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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