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규홍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세상에 대상을 부르는 이름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손주란 말이 없다면 남에게 손주를 어떻게 말해야 할까. 상상할 수 없이 불편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지혜롭게도 이러한 불편을 없애기 위해서 모든 존재 대상에 이름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그 중 사람을 부르는 말을 호칭이라 한다. 호칭에는 부름말과 걸림말이 있다. 삼촌이 걸림말(관계말)이라면 작은(큰) 아버지는 부름말이 된다. 그리고 호칭에는 친족끼리 사용하는 가정 호칭이 있다면 사회에서 부르는 사회 호칭이 있다. 우리는 농경사회 대가족에서 산업사회의 핵가족으로 되면서 가족이 단촐해 대가족 시대의 가정 호칭은 이제 점점 필요 없게 되고 있다. 거기에 호칭이 단순화되면서 가정 호칭을 사회 호칭으로 대신 사용하게 됐다.

노인과 어르신은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고 피도 섞이지 않은 사람에게 언니, 형, 삼촌, 이모라 부른 지는 오래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선생이고 사장이다. 요즘은 가게에서 주인을 부를 때 ‘여기요’ ‘저기요’라 하기도 한다. 호칭도 사회와 시대에 따라 바뀌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이처럼 혼란스럽게 쓰는 오늘날 호칭을 두고 과거와 같이 호칭을 엄격하게 구별해 사용하라 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호칭은 마음대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 호칭은 상대를 지칭하는 구실도 하지만 상대와 나와의 관계와 상대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호칭에는 기본적으로 몇 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 호칭은 상대와 자기의 관계나 상대의 속살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상대가 누구인지 나와 어떤 관계인지를 알 수 있게 불러야 한다. 둘째, 호칭은 가능한 한 상대가 듣기 좋은 호칭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과장해서 부르면 주위 사람에게 나쁜 인상을 주기 쉽다. 셋째, 남을 높여 부를 때는 직업이나 호칭 뒤에 높임 뒷가지(접미사) ‘-님’이나 ‘-선생님’을 붙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승무원님, 간호사(선생)님, 경찰관님, 의사 선생님 등으로 부를 수 있겠다. 넷째, 가정호칭의 걸림말은 시가는 ‘시-’, 처가는 ‘처-’, 외가는 ‘외-’, 아버지 여형제는 ‘고-’, 어머니 여형제는 ‘이-’를 줄기(어근) 앞에 붙이고 줄기는 친가의 걸림말을 그대로 쓰면 된다. 그리고 부름말은 모두 앞가지를 떼고 형님, 누님, 아우, 언니, 동생이라고 부르고 걸림말과 부름말을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이 숙모님, 고모(부)님, 이모(부)님으로 불러도 될 듯하다. 앞으로 인구가 줄어들면 이런 말도 부를 기회가 없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호칭을 가려서 잘 사용하는 사람은 사리분별을 잘하는 사람이고, 공사구별을 잘하는 사람이며, 생각이 바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호칭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임규홍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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