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아 화진초등학교 교사

아침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상쾌한 바다 공기를 마시며 우리 반 아이들은 오늘도 열심히 써 내려간다. ‘사각사각’거리는 연필 소리가 이내 교실을 가득 메운다. 아이들은 글을 필사하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고른다. 등교 후 편히 책 몇 줄 읽고 수업을 시작하면 아이들도 편하고 나도 편할 테지만, 내가 선택한 아침 모습은 글쓰기다. 그뿐 아니라, 아이들은 주 3회 상상 글짓기와 논설문을 적는다. 아무 제약도 없기에, 각자의 개성이 담긴 글들이 다채롭게 탄생한다. 하지만 창작에는 고통이 따르는 게 인지상정이니, 마냥 아이들이 좋아하진 않는다. 힘들다며 불평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기도 하지만, 난 글쓰기 지도를 멈출 생각이 없다.

글쓰기는 ‘내’가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학교와 학원으로 바쁜 일상에서 아이들은 ‘내 생각’을 가지기 쉽지 않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바삐 움직이고 시간 내에 많은 문제집을 풀어내는 데에 열중하면서 자기 생각을 뒤로 미룬다. 어쩌다 남는 시간에는 SNS를 하거나 게임을 하며 뇌를 정지시킨다. 하지만 글짓기를 하는 시간만큼은 빈 공책에 나만의 생각 터를 짓고 내 생각을 글자로 구현하게 된다. 누군가가 짜놓은 일정대로 움직이거나 객관식 정답만을 고르며 뇌를 정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생각을 만들어 가며 내 인생의 주인이 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처럼 우리는 인간이기에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생각해야만 존재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내 생각을 조리 있게 정돈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저것 가진 물건이 많아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두지 않으면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물건을 꺼내 쓸 수 없는 것처럼, 독서나 공부 등으로 이것저것 알고 있는 게 많아도, 생각을 조직해서 밖으로 꺼내보는 일을 해보지 않으면, 알고는 있으나 아는 게 아닌 지식이 된다. 특히 논설문과 같은 글쓰기는 아이들이 해당 주제에 주관을 갖게 하고,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평소 내가 알고 있던 지식과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분류하고 논리적으로 조직하게 한다. 설령 아이들의 글이 어설프거나 설득력이 떨어지더라도, 사고를 논리적으로 조직하는 과정 그 자체를 경험하기에 얻는 것이 많다.

글짓기가 너무 어렵다며, 아침부터 부단히 글을 써 내려가야 하는 게 귀찮다며, 투정 부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종종 있을 테다. 글쓰기라는 건 내 몸과 머리에 부단히 일을 시키는 것이니, 편할 리 만무하다. 글쓰기를 꽤 좋아한다고 자처하는 나 역시 글을 써내려 가는 과정이 오롯이 행복하진 않으니,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난 아이들과 앞으로도 매일 써 내려갈 것이다. 쓰는 순간은 조금 고통스럽겠지만, 글쓰기는 아이들이 자기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마주하게 하고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어 줄 것이니 말이다.

김보아 화진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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