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바야흐로 초여름이다. 물오른 나무들이 짙은 초록을 발산한다. 눈길 닿는 곳마다 내려앉은 싱그러움이 도시가 뿜어내는 가쁜 숨을 정화한다. 가벼운 바람에 까르르 거리며 제 몸을 흔드는 가로수길이다.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어 그 소중함을 잊고 지낼 때가 많은 가로수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지역의 기후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나무를 심어야 하며, 병충해나 공해에도 강해야 한다. 도시 미관의 확보와 통일성도 중요하다. 2024년 울산의 가로수 수종은 왕벚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이팝나무, 해송 순이다.

도심의 가로수 아래를 걷다 보면 뿌리가 보도블록이나 연석을 뚫고 튀어나오거나 회전하듯이 지재부를 둥글게 말고 있는 것이 자주 보인다. 잘 자라는 듯 보이는 나무의 상층부가 말라가는 것이 눈에 띄기도 한다. 대부분이 좁은 생육공간 탓에 당하는 수난이다. 뿌리의 크기는 대개 우리 눈에 보이는 수관 폭과 비례한다. 나무가 잘 성장하도록 하려면 최소한 수관 폭과 비슷한 크기의 공간이 필요하다.

▲ 팽나무 가로수, 식재공간이 좁아 뿌리가 지재부를 휘감고 있다.
▲ 팽나무 가로수, 식재공간이 좁아 뿌리가 지재부를 휘감고 있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는 평범한 농부 바홈이 등장한다. 가난하지만 꼭 필요한 만큼의 땅을 지닌 그는 어느 날 누군가 땅을 헐값에 판다는 말을 듣고 땅 주인에게 달려갔다. 그런데 매매 방식은 지극히 간단했다. 해가 뜨면 출발점을 떠나 하루 동안 걷고 돌아온 면적만큼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모두 무효가 된다는 단서가 달렸다. 파홈은 아침이 되자 곧장 출발했다. 땅 부자가 되는 꿈에 부풀어 점심을 먹는 것도 잊은 채 표식을 남기며 전진했다. 날이 저물기 시작했지만, 비옥하고 탐스러운 땅을 놓칠 수 없어 욕심을 부렸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간신히 도착하지만 그대로 즉사하고 만다. 그에게 필요한 땅은 결국 머리와 다리가 들어갈 수 있는 2미터가량의 무덤뿐이었다.

인간의 탐욕이 가져오는 비극적 결과를 경고하는 소설을 읽으며, ‘나무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할까’ 생각해 보았다. 큰 나무를 보고 싶으면 그만큼의 땅이 필요하고, 소박한 나무를 보고 싶으면 약간의 자투리땅도 충분하다. 참으로 소박한 진실이 햇살에 나뭇잎처럼 반짝거린다.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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