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문학박사

진(晉)나라 문공은 이름을 중이(重耳)라고 하는데, 제나라 환공에 이어서 춘추시대의 두 번째 패자가 된 인물이다. 그는 헌공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헌공의 후처로 들어온 여희의 계략에 빠져 형인 신생이 사망하고 자신은 진나라를 떠나 적나라로 망명했다. 헌공이 죽고 마침내 여희의 아들이 왕위에 올랐지만, 측근에 의해 살해되고 중이의 동생 이오(혜공)가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중이는 이오의 견제로 진나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고 자객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제나라로 달아났다. 혜공이 죽자 19년간의 긴 망명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귀국하여 62세에 왕위에 올랐다.

문공 중이가 방랑 생활에서 겪은 수모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한번은 위나라와 제나라 국경지방을 지날 때 굶주림에 지친 중이 일행이 신분을 밝히고 먹을 것을 구하자, 그 지방의 농부가 그릇에 밥 대신 흙덩이를 담아주었다. 비록 공자의 신분이지만, 쫓겨 떠도는 신세임을 안 농부가 중이 일행을 멸시한 것이다. 중이는 처음에 농부에게 화를 내려고 했지만, 흙을 받는 것은 땅을 받는 것이며 이는 영지를 받는 길조라는 주변 사람의 말을 받아들여서 이내 화를 내는 대신 ‘흙은 생명을 길러내는 신성한 것’이라면서 흙이 담긴 밥그릇에 절을 하고는 공손하게 받았다.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배워야 할 점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이다. 사랑도 넘어서고 미움도 넘어섰을 때 감정에 일그러진 판단을 넘어설 수 있다. 망명길에 오른 중이가 위험한 처지에 있으면서 닥칠 때마다 분노를 터뜨렸다면 그는 제후에 오르지도 패자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고 역사에 아무런 이야기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틈틈이 달려드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면서 시련을 잘 감당한 데에 있다.

요즘 세상에는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을 많이 본다. 작은 시련에도 마치 나에게만 있는 것처럼 상황을 탓하고 억울해하고 분노한다. 길을 떠나려 하면 비가 내릴 것이고 불이 나면 바람이 분다. 그것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해야 할 일은 많아지고 감당해야 할 시련은 늘어난다. 상황을 탓하고 쉽게 감정을 표출하는 것만큼 나에게 해로운 것은 없다. 흙 그릇에 절을 한 문공 중이가 생각나는 요즘 우리 사회이다.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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