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에 경기가 안 좋아 암담하고
정치놀음에 휘둘리는 사회는 참담하고
순국선열 지하서 혀를 찰 담담한 시절

▲ 신면주 변호사

편하게 설을 풀 수 있는 고등동기와 오랜만에 막걸리 한잔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담담하게 지낸다고 했다. 한 성깔하는 정의파 친구라 담담(淡淡)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데 싶었지만 먼저 설을 시작했다. 현대 정주영의 좌우명은 예상과 달리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담담하라’다. 난관을 돌파하는 배짱과 불굴의 의지는 담담한 마음에서 나왔다고 하자, 친구는 출근하면 경기가 너무 안 좋아 암담(暗澹)하고, 퇴근 후 뉴스 보면 정치인들의 작태가 너무 참담(慘澹)해 담담하게 살고 있다는 뜻이란다.

식당에서 2000원 정도이던 막걸리가 배로 올라 마시기가 부담될 정도로 높아진 물가, 훌쩍 높아진 이자율, DSR 규제에 묶인 대출 등으로 시중에 돈이 돌지 않아 살기가 너무 힘들다. 게다가 서민들을 노리는 보이스 피싱, 주식과 코인 투자, 다단계 등의 온갖 인터넷 사기꾼이 득실득실하다.

친구도 며칠 전 아들을 사칭한 문자에 속아 임시폰으로 무심코 답을 하는 순간 개인정보와 인증번호까지 모두 사기꾼에게 넘어가는 해킹을 당했다. 예금이 인출된 것은 물론이고, 제2의 금융피해를 막기 위해 금융감독원과 시중 은행을 찾아다니며 거래 중단 조치를 하느라 아직도 애를 먹고 있다. 막상 피해자가 되어보니 금융감독원이나 수사기관에서도 전 금융기관에 통보해 즉시 거래를 정지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없더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치권은 총선 투표지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민생에 대한 약속은 먼 추억이 되었다. 야당 대표의 형사재판 변호인들이 국회의원이 되어 야당 정치인의 비리를 수사한 검사와 중형을 선고한 판사를 탄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법왜곡죄, 수사기관 무고죄 등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검사의 오류는 법원의 재판을 통해, 법원 판결의 오류는 상급심을 통해 수정하라는 헌법상의 사법체계를 부정하는 입법 쿠데타다.

이에 맞서야 할 여당은 총선 참패에 주눅 들어 오로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목을 매고 있을 뿐 ‘그 나물에 그 밥’의 당권 놀음에 정신이 없다. 뿐만 아니라 6·25 당시 뛰어난 용맹성으로 여성 종군기자인 ‘마거릿 하긴스’에 의해 ‘귀신 잡는 해병(Ghost Catching Marine)으로 명명된 해병대마저 정치 놀음에 휘둘리고 있다.

작년 집중호우시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된 해병 채모 상병이 급물살에 휩쓸려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사고 당시의 상황이 동영상으로 언론에 공개돼 채상병의 사망원인이 은폐되거나 조작될 우려는 전혀 없다. 사망원인이 명백한 이상 구명조끼 착용 등의 안전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과실에 대한 책임 소재만 남게 된다.

통상 이런 경우 현장 지휘관과 직근 상급 지휘관 정도가 형사처벌 선상에 오르고, 그 이상은 보직해임 등의 지휘 조치를 하는 것이 전례다. 이는 고위직을 봐주려는 것이 아니라, 직근 상급 지휘관 이상은 주의의무 위반과 사고 간의 인과관계 입증이 법률상 어렵고, 이로 인한 군조직의 와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즉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사단장에 대한 형사처벌을 봐주라는 외압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현행법상 군내 사망사고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군 수사기관은 사건의 개요와 관련자 정도를 정리해 경찰에 이첩하면 그때부터 수사가 개시된다. 이첩 과정은 수사가 아니므로 그 범위와 양식에 대한 상급 부대의 이견(異見)을 바로 수사외압으로 단정할 수 없다. 누구보다 군조직을 잘 아는 대령 계급의 수사단장이 공명심에 사로잡혀 이를 수사외압이라며 정치권으로 달려간 행위는 그 의도를 충분히 의심받을 만하다.

등등의 설을 풀며 나라의 근간인 사법부와 명예가 전부인 해병대마저 흔드는 정치 권력의 애완견들을 지면에 옮길 수 없는 장소로 보내자며 목소리를 높이다가, 내일부터 의사들 파업이라 아프면 안 되니 그만하자는 담담(淡淡)한 말을 남기고 서로 총총히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6·25이고, 6·1은 의병의 날이었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손바닥만 한 나라를 지켜보겠다고 의병으로 학도 의용군으로 나섰던 6월의 무명 고혼들이 지하에서 혀를 찰 담담(澹澹)한 시절이다.

신면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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