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간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여러 국가의 예술가들과도 인연
몇몇 예술가들은 직접 울산 방문
대학캠퍼스에 대형벽화 재능기부
울산시립미술관에 작품 전시도
10월24일까지 3~4명의 작가 방문
현장 퍼포먼스 등 작품 활동 예정
7000년 전 선사 예술도시인 울산
‘어반아트’의 열풍 이어가길 기대

▲ 박철민 전 울산시 국제관계대사 전 주헝가리 포르투갈 대사

울산시 국제관계대사로 부임한 지 1년4개월이 되었다. 6월 마지막 날, 35년 1개월간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만기 정년이라는 영광된 계급장을 달았다. 친구들로부터 서운하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웬걸 담담하고 후련한 마음마저 들었다. 공무원으로서 모범이 되어야 하고 청렴과 결백을 지상과제로 삼으면서 국민에게 봉사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일념 아래 줄곧 달려왔던 하루하루였다.

많은 선배분이 정년 후에는 최소 몇 년간 자유 시간을 만끽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동안 폭주 기관차 줄곧 달려왔기에 몸도 마음도 방전상태(burn out)라 재충전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충분히 수긍이 가지만 적어도 내 얘기는 아니다. 치즈가 아니라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며, 60은 정부가 정해놓은 기준일 뿐이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생체 나이로 아직 50대가 되지 않았고, 신체적으로 문제없고 일할 의지까지 있다고 하면 연령이 찼다고 소일하고 싶지는 않다.

35년 전 외교부 입부시 외교관의 정년은 분명 60보다 한두 살 더 많았는데, 첫 번째 해외 근무를 하고 서울로 복귀해 보니 어느새 정년이 줄어 있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른 것이었고, 지금에 와서는 더욱이 연금 재원의 고갈, 저출생에 따른 노령화 인구의 경제생산 재투입 필요성 등 사회경제 보건 노인복지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하루바삐 대책을 강구해야 할 급선무이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와 중남미 많은 국가는 빠른 속도로 정년이 70세에 가깝도록 연장되고 있다. 20년 전부터 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도 마찬가지다. 주포르투갈 대사로 근무할 때 가깝게 지내던 멕시코 대사가 하루는 최근 취임한 신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관철돼 공무원 정년이 5년 연장돼 70까지 일하게 됐다며 자랑했다. 같이 있었던 60대 중순인 유럽 출신 어떤 대사는 자기 나라도 70세가 정년이고, 고향으로 돌아가 손주들과 노는 시간을 더 가지고 싶은데 새로운 임지로 곧 떠나야 한다면서 불평했다.

‘왜?’ ‘부러운 일 아닌가?’ 10년 전까지만 해도 정년 연장은 우리나라도 불가피한 당연지사가 될 것이라 확신했었다. 그런데 주헝가리 대사로 부임하던 몇 년 전부터는 60 이후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설계할까를 고민해 왔다. Carpe diem이라고 했던가? 영어로는 Seize the moment쯤 되겠는데, 결과를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매 순간을 즐겨왔기에 그런 것인지, 아직 더 일하고 싶고 배터리도 충분히 남아있다. 고마운 일이다.

작년 5월 경상일보에 게재한 첫 번째 칼럼 제목이 ‘꿀잼 문화도시 울산을 꿈꾸다’였다. 현대미술의 장르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도시예술(Urban Art)’분야의 국제적 저명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울산에서 볼 수 있고, 또 그들이 도시 곳곳의 벽에 작품을 남겨준다면 울산도 예술문화도시로 변모될 수 있겠다는 바람과 꿈을 적은 글이었다. 꿈은 꿈으로만 그쳐서는 안 되고 실현이 되게끔 부단히 노력할 때, 결과와 무관하게 재미가 쏠쏠하다.

▲ 미국 도시예술분야 작가인 JonOne이 울산과학대 서부캠퍼스에 재능기부한 작품 ‘New Bangucheon’.
▲ 미국 도시예술분야 작가인 JonOne이 울산과학대 서부캠퍼스에 재능기부한 작품 ‘New Bangucheon’.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오찬·만찬 행사에 초청도 많이 받아보았고, 호스트가 되어 손님들을 대접한 적도 많다. 외국 손님들은 식사를 하면서 즉흥적으로 세계사, 예술, 문화 등 다양한 환담 소재를 꺼내는 경우가 많은데, 제대로 대응을 못 하면 어색한 분위기로 흐르거나 아니면 대화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해 손님들끼리만 웃고 즐기게 된다. 주최자가 장소와 음식만 제공하는 아웃사이드로 소외된다면 최악의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회자되고 있는 국제정세 현안뿐 아니라 ‘small talks(한담)’의 소재인 와인, 음식, 음악, 미술, 역사, 전통문화 등에 대한 소양을 키우려고 노력해 왔다.

그래서 인지, 어느 순간 예술이 낯설지 않게 되었고 적지 않은 예술가들과의 만남도 이루어져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중에는 도시예술분야에서 저명한 Jon One(미국), Vhils(포르투갈) Thoma Vuille(스위스), Zevs(프랑스) 등이 있다. Jon One은 유럽국장 시절 사무실을 방문했고 대한민국 외교부 국장 사무실이 멋있다면서 엄지척을 해 주었다.Zevs는 경복궁 뒤편 단골집에서 돼지국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는 감기 몸살기가 사라졌다면서 그 후, 볼 때마다 다시 가자며 졸랐다. Vhils는 17세기 초 주앙 멘데스라는 한반도에 처음 도래한 포르투갈 상인의 조형물을 리스본과 통영에 세우자는 필자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여 재능기부를 할 정도로 한국을 좋아하는 예술가이다.

Thoma는 노랑 고양이(M. Chat)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데 최근 1년 새 두 번이나 울산을 방문했고 7000년 전 선사시대 예술가들이 남긴 반구대 암각화에 매료돼 원조예술의 도시인 울산에 재능기부를 하고 싶다는 의향을 보여 성사시킨 사실도 있다. 지금 그들의 작품이 OBEY, Crash, JR, Jeff Koons 걸작들과 함께 6월27일부터 울산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개막식에 참가한 Jon One은 울산과학대학 서부캠퍼스에 대형 벽화를 재능 기부했다. 10월27일까지 계속될 전시기간 중에 3~4명의 출품 작가들이 울산을 방문해 현장 퍼포먼스를 통해 ‘어반아트’의 열풍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벽화가 곳곳에 남게 되면 도시의 명물이 될 것이고, 한 번의 행사로 그치지 않고 내년 그리고 후년 계속된다면 울산은 런던의 브릭레인 마켓이나 LA 아트디스트릭트처럼 국내는 물론 해외의 애호가들이 속속 모여드는 ‘어바니즘 시티’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제 새로운 꿈을 꾼다. 3~4년 내 울산 전역에 100개의 걸작 벽화가 그려져, 7000년 전 예술도시 울산이 ‘New Bangucheon’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박철민 전 울산시 국제관계대사 전 주헝가리 포르투갈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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