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규홍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태초에 인간이 말을 만들 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아마도 남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요청할 때나 무엇을 하게 시키는 경우가 아닌가 한다. 말이 가지고 있는 요청과 명령의 구실이 인간의 의사소통에서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요청과 명령은 모두 말할이(화자)가 들을이(청자)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는 말하기’다.

그런데 인간은 지극히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군대와 같은 상명하복의 특수한 조직이 아닌 한 그 누구든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을 함부로, 일방적으로 명령하거나 강제할 수 없다. 단지 그렇게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그걸 하늘에서 받은 기본권이라 한다. 따라서 상대의 요청과 명령에 따를 건지 아닌지는 온전히 들을이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명령’이란 말은 ‘복종’의 상대어로 상대의 행동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강제하며 통제하는 부정적 느낌을 주는 말이다. 명령이란 말보다 요청이란 말이 더 넓은 뜻넓이를 가지고 있다.

요청하는 말하기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말할이가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바라거나 시키는 직접 말하기가 있고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간접 말하기가 있다. 예컨대, 들을이에게 문을 닫아주기를 바랄 경우 “문 닫아라”라고 말하는 것은 직접 말하기다. 이것은 상대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명령이다.

이와 달리 “문 (좀) 닫아 줄래?(주시겠습니까?)”처럼 행위를 들을이가 선택하도록 하여 상대를 존중하는 의문형이나, “문 좀 닫아주면 고맙겠습니다”와 같이 평서문을 사용해 말할이의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자, 이제 일 좀 하자”나 “이제 공부 좀 하자”와 같이 말할이가 들을이와 행동을 같이 하는 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요청이나 시킴의 정도를 약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여기에 ‘좀’이나 ‘제발’과 같은 부사를 사용하면 시킴의 정도가 약하게 되면서 훨씬 더 부드러운 표현이 된다.

또 다른 표현 방법으로 ‘나 말하기(나 전달법)’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상대에게 요청을 나의 입장에서 말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아이에게 컴퓨터 게임을 그만 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할 때 “너 컴퓨터 게임 그만 해라” 라고 할 수도 있지만 “너 컴퓨터 게임 그만 했으면 참 좋겠다” 또는 “네가 컴퓨터 게임을 오래하는 걸 보면 엄마는 너무 걱정이 된단다” 등과 같이 나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나 전달법으로 말을 하면 들을이는 말할이로부터 일방적으로 강요당하는 느낌을 덜 받게 된다.

남에게 무엇을 요청하거나 시킬 때는 상대의 인격을 최대한 존중하고 체면을 살려주는 간접 말하기를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했을 때 들을이는 말할이의 뜻을 보다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되며 들을이와 관계도 더 좋아진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한층 부드럽게 될 것이다.

임규홍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