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문학박사

세상에는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정작 아는 사람은 드물다. ‘명무소용(明無所用)’이라는 말이 있다. <근사록>‘위학’편에 나오는 말이다. 원문은 ‘아는 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행동할 수가 없고, 행동함이 없으면 아는 것이 쓸모가 없다(非明 則動無所之 非動 則明無所用)’이다.

본래 <주역>에서 풍괘(豊卦)의 초구효(初九爻)를 설명하면서 하괘가 명(明)이 되고 상괘가 동(動)이 되는 것을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명은 명지(明知)로 분명히 아는 것이며, 동은 행동하는 것이니, 앎과 행동이 서로 어울려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분명하게 아는 것과 그 앎을 실천하는 것이다.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실천하고 싶어도 실천할 수가 없다. 아니 실천해서도 안 된다.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그 앎이 자신과 세상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앎이 분명하지 않음에도 실천하려고 하면, 그로 인한 해(害)는 더 커진다. 분명하게 안다고 하더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그 또한 아는 것이 아니다. 앎은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실천하지 않는 앎은 그냥 서랍 속 백과사전에 불과하다. 손가락 한 번 움직이면 지식이 줄줄 쏟아지는 세상에 실천 없이 머릿속에 든 지식은 아무런 쓸모없이 내 몸속 귀한 자리만 차지하는 것이다.

분명하게 알기 위해서는 나의 앎에 대한 겸손과 타인의 앎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실천은 나에 대한 용기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다. 분명한 앎과 실천하는 앎은 결국 올바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 곧 의(義)와 닿아있다. 세상에 안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만,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나 또한 안다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분명하게 알기 위해 앎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을 거듭할 뿐이다.

<주역> 함괘(咸卦) 상사에 ‘군자는 마음을 비우고 다른 사람의 작용을 받아들인다’라고 하였고, <역전(易傳)>에 ‘마음속에 사사로움이 없으면 느낌을 받아서 통하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였다. 명지(明知)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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