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상아 연암초등학교 교사

“달을 찍는 이유는 달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없으면 외롭지 않으니까요.” 영화 김씨 표류기의 명대사다. 짜장면을 만들어 먹는 장면으로 유명한 이 영화는 한강의 밤섬에서 표류하게 된 인간의 생존기를 다룬다. 이 영화를 보며 도시에서는 있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B급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했다. 학교에 들어오기 전까지.

‘교대신’이라고 들어봤는가? 6개나 달린 팔에 단소, 배구공을 쥐고 은은한 미소를 띤 허구의 존재이다. 과장이 아닌 것이 교사는 보호자이면서 상담사, 각종 증상을 듣는 의원이면서 갈등을 중재하는 재판관, 청결을 유지하는 청소부이면서 작은 입방아에 오르는 연예인이다. 역할극의 배우 겸 감독으로 일인 다역을 맡아 학급을 이끌어간다. 장르는 일상, 코미디에서 때로는 액션이 있으며 고학년의 경우 로맨스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하교 종이 치면 극이 막을 내리고 꽉 찼던 무대에 교사 홀로 남는다. 온기가 빠져나간 적막 속에 그제야 한숨을 돌린다. 이때부터 퇴근시간까지 교사는 보호자 상담 및 학교 업무를 처리한다. 이렇게 9시부터 활짝 열린 교실의 문은 15시쯤이 되면 저마다의 용무로 바쁘게 닫힌다. 닫힌 교실은 하나의 섬이 된다. 특별한 용건 없이 다른 교실에 찾아가려면 새로운 땅에 발을 디디듯 용기가 필요하다. 이 거리감은 서로를 존중하는 편안함, 시대를 타고 흐르는 개인주의를 선사하지만 고독함도 함께 준다. 의지할 곳이 없으면 홀로 서게 되고, 책임감의 무게를 아는 개인은 단단해지며 그 사이 틈을 스스로 메운다. 올해 깨달은 악순환의 고리다. 재작년 교권 침해를 겪었을 때,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생각에 홀로 연구실에서 눈물을 쏟은 적이 있다. 물론 동료 선생님과 관리자에게 상황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았지만, 결국 책임은 1인분임을 알게 됐다. 2년이 흐르고 옆 반 막내 선생님에게 같은 상황이 왔다. 다급한 위로의 말을 던져 보지만, 결국 문밖에서 들리는 학생과의 대치 상황에 함부로 낄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시선을 거둘 수도 없는 제삼자가 된다. 답답한 마음에 회의시간에 물었다.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20년 경력의 부장님부터 2년차 신규 선생님까지 아무 말이 없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가수 이미자가 부른 아버지의 애창곡, 섬마을 선생님. 서울에서 섬마을에 온 선생님에 대한 애처로움이 담긴 명곡이다. 학생이 분을 못 이겨 친구의 목을 조르고, 수업 시간인데도 복도를 서성이고, 누군가에게 말로 비수를 꽂는 모습을 보면 이 제목이 떠오른다. 학급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담임 몫이다. 나머지 없이 딱 나누어 떨어지는 내 몫이다. 사안이 일어난 때에 학생과 떨어져 있었다면 방임, 보고 있었는데 말리지 못했다면 무능, 사안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무관심이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몇몇 교사는 모두가 함께 있기에 외로운 섬마을에서 표류하고 있다.

배상아 연암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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