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데 들에 가랴 사립 닫고 소 먹여라
장마가 매양이랴 쟁기 연장 다스려라
쉬다가 개는 날 보아 사래 긴 밭 갈아라.

심심은 하다마는 일 없을 손 장마로다
답답은 하다마는 한가할 손 밤이로다
아이야! 일찍 자다가 동트거든 일러라.-<고산유고>

바쁜 삶 잠시 쉬어가는 장마철

▲ 한분옥 시조시인
▲ 한분옥 시조시인

연일 계속된 폭염 속에 7월 장마는 그나마 대지의 열기를 식힌다. 아니라면 저 불덩이를 인간이 어떻게 감당하랴. 집집마다 냉방으로 열기를 뿜어대니 대지는 그야말로 찜통이다.

비에 갇혀 할 일을 못하는 시대도 아니지만 그나마 비오는 날이면 고요하게 마음 다스리는 여유가 있다. 이럴 때 마당 있는 집이 좋구나 싶다. 파초에 비 듣는 소리, 우케를 널었다가 소나기에 혼비백산할 일도 없이 담장 아래는 봉숭아가 피고 족도리꽃이 너울대고 보랏빛의 도리지꽃도 수줍게 핀다. 집집마다 나리꽃이 대궁이를 쭉 빼올려 붉다.

어느 달 어느 계절이 아름답지 않은 철이 있겠냐마는 푸르다 못해 진초록은 충만한 삶의 에너지로 천지를 휘감는다. 그야말로 충만한 7월이다.

장마 때는 달려가던 인생의 속도를 늦춰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뒤를 돌아보기도 하는 그런 계절이 아닌가.

요 며칠 장마에 우산 속으로만 걷다가 고개를 드니 하늘이 갑자기 높아져 있다. 하얀 뭉게구름이 둥실 높이 떠간다.

고산 윤선도는 박인로, 송강 정철과 더불어 조선시대 시가(詩歌)문학의 최고봉이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근사하게 풀어내어 자연과의 화합을 주제로 읊었다.

여름 장마철에 농사를 쉬고 있는 농부의 모습에, 지금은 은거하고 있지만 이럴 때 출사(出仕)하지 말고 수양하며 기다리다가, 장마(시련)가 끝나면 다시 조정에 나가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아! 하늘이 높아지면 7월도 가고 무성한 대지의 기운도 꺾이고 말 것이다. 해마다 7월의 정점을 지나 높아지는 하늘을 보면서 또 한 해가 가고 마는 것을 눈치 채곤 했다.

아! 벌써 하늘이 높아지구나. 입추도 오기 전에 이 폭염 속에서도 높아진 하늘에서 가을을 보고 만다.

또 한해가 이렇게 가는 구나.     한분옥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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