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때가 오면 열 손톱마다 비린 낮달이 선명했다

물가를 찾는 것은 내 오랜 지병이라, 꿈속에서도 너를 탐하여 물 위에 공방(空房) 하나 부풀렸으니 알을 슬어 몸엣 것 비우고 나면 귓불에 실바람 스쳐도 잔뿌리 솜털 뻗는 거라 가만 숨 고르면 몸물 오르는 소리 한 시절 너의 몸에 신전을 들였으니

참 오랜만에 당신

오실 적에는 볼 밝은 들창 열어두고 부러 오래 살을 씻겠네 문밖에서 이름 불러도 바로 꽃잎 벙글지 않으매 다가오는 걸음 소리에 귀를 적셔가매 당신 정수리 위에 뒷물하는 소리로나 참방이는 뭇별들 다 품고서야 저 달의 민낯을 보겠네

뜨거운 여름날 읊조리는 관능적인 연시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잎자루 가운데가 부레처럼 부풀고 그 부레 같은 공기주머니가 둥근 비녀 머리를 닮아서 부레옥잠. 연못이든 수조든 물이 있으면 어디서든 잘 자라고, 잘 번지고, 잔뿌리가 물을 걸러 깨끗하게 하는 수중 정화 식물. 부레옥잠은 연보라색 작은 별 모양 꽃이 꽃대 끝에 오글오글 모여서 한여름에 핀다.

시인은 하늘에는 하얀 낮달이 떠 있고 물에는 토실하게 부푼 부레옥잠이 떠 있는 여름에 시상을 떠 올렸으리라. 부레옥잠의 부푼 주머니는 공방(空房), 부재중인 ‘당신’을 기다리는 신방(新房)이 되어 실바람만 스쳐도 하마 당신일까 숨을 고르게 된다. 마침내 오랜만에 당신이 오실 때 쉬이 대답하지 않고 일부러 오래 살을 씻겠다는 저 새침한 품이 몸때, 몸물 등과 어울려 관능적으로 읽힌다.

이 시는 당신에 대한 그리움, 당신의 오심, 애태움 같은 고전적인 연시의 얼개를 취하는데, 얼개뿐 아니라 실바람이나 들창, ~하매 같은 시어도 예스럽고 맛깔스럽다. 임에 대한 연심을 서리서리, 구비구비 노래한 황진이의 시조가 떠오르는 시. 그래도 부레옥잠의 꽃말은 ‘승리’라 하였으니 ‘달의 민낯’ 참 정갈하겠다.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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