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몸 살자 하니 물것 겨워 못 살리로다

피겨 같은 가랑니, 보리알 같은 수퉁니 주린 이, 갓깬 이, 잔벼룩 굵은벼룩 강벼룩 왜벼룩 기는놈 뛰는놈에 비파 같은 빈대새끼, 사령 같은 등에, 갈따귀 사마귀 센바퀴 누른바퀴 바구미, 노린재, 뾰족한 모기, 다리 기다란 모기. 살진 모기 야윈 모기 그리마, 뾰록이, 주야로 빈틈없이 물거니 쏘거니 빨거니 뜯거니 심한 당비루에 어려워라

그중에 차마 못 견딜손 오뉴월 복더위에 쇠파린가 하노라. -<해동가요>

벌레 등쌀 괴롭지만 탐관오리만 하랴

▲ 한분옥 시조시인
▲ 한분옥 시조시인

사람살이 무엇 하나 성가시지 않는 게 있을까만 여름날엔 물것들이 그것이다. 마당에 잠시라도 내려 서 있으면 눈에 뵈지도 않는 것들이 손에도 발에도 덤빈다. 여름은 더위도 더위지만 그야말로 물것들이 참 성가시게 한다. 모기도 파리도 그 외 이름도 알 수 없는 물것들이 사람을 괴롭힌다.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밀림에 사자의 천적은 모기떼라고 하지 않던가, 동물의 피를 빨아먹고 생명을 영위하고 각종 병균을 옮기는 해충들이 그것이다.

수천 마리의 모기떼가 사람에게 덤빈다면 핵무기만큼이나 무서운 존재가 아닐까.

지금이야 해충 박멸에 소독약들이 많으니 크게 걱정이야 없지만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흙속엔 기는 벌레, 해질녘엔 날벌레, 저녁엔 모기떼 천국이었다.

지금 이 사설시조에 날것, 기는 것들의 폐해를 열거했지만 사실 더 괴로운 것은 착취하는 탐관오리 무리들이 너무 많아서 고통을 견딜 수 없다고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밤낮으로 쉴 새 없이 물기도, 쏘기도, 빨기도, 뜯기도 하는 물것들을, 숨 가쁘게 엮어 나가는 익살스런 말투가 재미있다. 사설시조가 아니고는 보여 줄 수 없는 묘미를 흠뻑 담고 있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세금 낼만큼 내고 사는 현대인들도 보통 어렵지 않은 게 현실이다. 오죽하면 물것들을 줄줄이 불러, 그 중에 차마 못 견딜 손, 유월 복(伏) 더위에 더러운 ‘쇠파리’로 비유하는 해 본 것일까.

여름 더워에 곡식이 자라고 익어서 우리의 먹거리가 풍성해진다.

더워도 참 덥다.

한분옥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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