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끝난 죽집에 앉아
내외가 늦은 저녁을 먹는다
옆에는 막걸리도 한 병 모셔놓고
열 평 남짓 가게 안이
한층 깊고 오순도순해졌다
막걸리 잔을 단숨에 비운 아내가
반짝, 한 소식 넣는다

죽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순한 거 같아
초식동물들 같아

내외는 늙은 염소처럼 주억거리고
한결 새로워진 말의 밥상 위로
어둠이 쫑긋 귀를 세우며 간다

죽 먹는 모습은 되새김질하는 초식동물 같아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밥 빌어다가 죽 쑤어 먹을 놈’이나 ‘피죽도 못 먹은 얼굴’ 같은 속담을 생각하니 죽이란 근기가 없거나 궁상스러워 보인다는 부정적 의미가 우세한 음식 같다.

하지만 사실 죽이란 여러 가지 미덕이 있는 음식이다. 팥죽, 호박죽, 전복죽 같은 죽의 종류를 보니 어지간한 재료들은 다 죽으로 만들 수 있고, 재료를 잘게 다져 물을 부어 끓이면 되니 조리법도 비교적 간단하고, 유동식이라 소화도 잘 되어 병을 앓거나 기운이 없을 때 먹기 좋다. 아플 때 주로 먹다 보니 무언가 엄마의 사랑이나 정성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몸살로 잇몸까지 들뜰 때 푹 끓인 찹쌀죽을 먹으면 따뜻한 죽물이 온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병의 뿌리를 어르고 달래며 살살 푸는 것이 느껴진다.

잘게 다진 소고기나 닭고기, 새우나 전복 같은 것도 오래 끓이면 찹쌀과 뭉근히 섞이고 어우러지면서 핏물이나 누린내 같은 동물성은 제거되고 심심하고 담백한 찹쌀의 식물성을 닮아간다.

그러니 죽집 아줌마가 죽을 먹으러 오는 사람은 초식동물 같다고 할 만하다. 헐거운 몸으로 천천히 죽을 뜨는 모습이 우물우물 되새김질 하는 초식동물을 닮은 것도 같다. 죽을 파는 늙은 내외의 모습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늙은 염소 같다고도 하였으니.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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