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이 오마 하거늘 져녁밥을 일찍 지어 먹고
중문 나서 대문 나가 문지방 위에 치달아 앉아 이수로 가액하고 오는가 가는가 건넛산 바라보니 검어 희뜩 서 있거늘 저야 님이로다

버선 벗어 품에 품고 신 벗어 손에 쥐고 곰븨님븨 · 님븨곰븨 천방지방 지방찬방 진데 마른데 가리지 말고 워렁충창 건너가서 情엣말 하려 하고 곁눈을 흘낏 보니 상년 칠월 사흘날 갉아 벗긴 주추리 삼대 살뜰히도 날 속였구나

모쳐라 밤일새 망정 행여 낮이런들 남 웃길 뻔하여라
-<청구영언>

님인줄 알고 촐랑촐랑 뛰쳐나갔건만…

▲ 한분옥 시조시인
▲ 한분옥 시조시인

눈이 빠지도록 헛것에 쐬도록 기다리는 게, 임 만은 아니다.

기어이 가고야 말고 오고야 마는 것이 분명 임만이 아니다. 폭염은 마법의 올무에서 풀려난 듯 가고. 가을도, 임도 오고야 말 것이다. 남태평양 수심 깊은 한 가운데를 헤집고 뒤집은 뒤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한차례 다녀가기를 얼마나 애 태워 기다렸는지…

여름은 신사숙녀 모두가 체면 없이 벗는 계절이니, 신사답기 힘들고 요조한 숙녀 되기 쉽지 않은 계절이다.

못난 데 부끄러운 데를 가리고 비단으로 치렁치렁 멋을 부려도 시원찮아, 가는 세월이 원망스러운데 올 여름은 정말 너무 했다.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나라가 있지만 생명체가 살 수 있는 별이 하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구가 유일한 생명체가 사는 별 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을 분노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지구가 위대하고 거룩한지를 올여름을 지나면서 더욱 느껴졌다.

흙 한줌에 풀 한포기도 많은 생명체를 품고 있는 거룩한 땅, 살맛나는 이 땅, 공기, 물, 햇빛 어느 것 하나 고맙지 않는 것이 없는 이 지구에 우리는 경배 드린다.

임 오기를 기다려 본 이는 알 것이다.

비슷한 것만 봐도 임인가 싶은, 기다림이 얼마나 다급하고 들뜬 마음에 ‘곰븨님븨·님븨곰븨 천방지방 지방천방’과 같은 언어유희로 임을 만나고 싶어 장황하고 수다스럽게 말하는지를…

삼대를 임으로 알았다가 속은 낭패감에 스스로 무안해 ‘주추리 삼대 살뜰히도 날 속였다’고 밤이라 망정이지 남의 눈에 안 띈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혼자 가슴을 쓸어내린다.

올 여름을 살면서 지구의 위대함에 놀라워 했다. 건강한 이 땅에서 임을 기다리고, 사랑을 하고 자식 낳고 자손만대 억년새새 누려갈 우리가 아닌가. 한분옥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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