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일본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소. 사람이라고 하기 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운 것들이 살고 있었소. 에이시라고 부르는데 당신들 조상들이 모조리 잡아 죽였지요. 더러 데리고 살기도해서 피가 조금 섞이기도 했지요. 당신들은 백제의 유민들이 건너가 나라를 세운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미 그 보다 수천 년 전에 건너가기 시작했던 것이오.”

“네놈이 죽을 때가 되었나보다. 대일본제국을 욕보이고 천황폐하를 욕보였으니 온전히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마츠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김일환의 가랑이를 걷어찼다. 고환을 발길에 차인 김일환은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바닥에 엎드린 김일환의 등짝을 구둣발로 밟았다. 그 바람에 간신히 일어나려던 김일환이 입을 돌바닥에 찧었다.

내가 마츠오를 말렸다. 김일환은 입술이 찢어져 피를 흘렸다. 그러면서 벗어 놓았던 망태를 찾아 그 안에 들어 있던 붉은 돌도끼를 꺼내었다. 그 돌도끼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마츠오 앞으로 가져갔다.

“이 돌을 보시오. 이것이 바로 수천 년 전에 사흘이라는 청년을 죽인 붉은 돌도끼요.”

“거짓말! 조센징은 모두 거짓말쟁이야! 이 돌은 네가 백운광산에서 훔쳐낸 것이 틀림없어. 이게 어떻게 수천 년 전에 내려온 돌이란 말이냐. 네놈은 도둑놈이야.”

“도둑놈?”

입술에 붉은 피를 묻힌 김일환이 씨익 웃었다. 그 웃음에 소름이 끼쳤다. 마츠오가 주먹을 들어 김일환을 치려했다. 내가 마츠오의 허리를 감싸 안은 탓에 주먹은 김일환에게까지 날아가지 않았다. 마츠오가 헛 주먹을 날린 다음 순간이었다. 김일환이 손에 쥔 붉은 돌도끼를 허공으로 번쩍 치켜들었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마츠오를 끌어안고 있는 팔을 풀지 못했다. 마치 내가 마츠오를 도망가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는 꼴이었다.

붉은 돌도끼가 허공을 가르며 내려왔다. 마츠오가 고개를 살짝 비틀어 피했는데 돌도끼는 정확하게 마츠오의 오른쪽 눈썹 위 이마 한가운데를 찍었다. 마츠오의 외마디 비명이 건너편 바위벽에 부딪쳤다 되돌아 나오며 골짜기 전체를 울렸다.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내가 입고 있는 옷과 얼굴에도 피가 튀었다.

마츠오는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마츠오를 안고 있었다. 스르르 맥없이 주저앉는 마츠오를 그대로 바닥에 눕혔다. 이마의 두개골이 벌어져 뇌수가 허옇게 드러났다. 눈을 부릅뜨고 있는 마츠오의 얼굴이 평상시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자신에 찬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공포에 질린 얼굴 표정에 소름이 돋았다.

“이게 무슨 짓이오. 사람을 죽여서 어쩌자는 것이오?”

내 목소리도 부들부들 떨려 나왔다. 김일환의 표정은 의외로 덤덤해 보였다.

“일본 놈을 죽인 게 뭐가 잘못됐다는 것이오.”

“일본인은 사람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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