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씨. 당신도 정신 좀 차리시오. 이놈이 당신 마누라하고 붙어먹은 사실은 알고 있는 거요?”

나는 난데없는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붙어먹다니요?”

“그렇게 일본 놈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마누라까지 내어 주다니 도대체 쓸개가 있는 거요?”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몰라 재차 물었다. 김일환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김일환의 말로는 마츠오가 나의 아내 김순조와 백운산 계곡에서 정사를 벌이는 걸 목격했다고 했다.

“집에 가거든 당신 마누라한테 직접 물어보시구려. 올봄에 백운산에 산나물을 뜯으러가서 어떤 놈하고 붙어먹었는지. 반곡 마을 김일환이를 만났다고 하면 발뺌도 못할 거요. 나하고 딱 마주쳤으니까.”

나는 내 이마에 도끼를 맞은 것처럼 현기증을 느꼈다. 이마가 깨진 채 눈을 까뒤집고 쓰러져 있는 마츠오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이놈은 벌써부터 처단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던 놈이오. 이놈이 우리 백운산 청년들을 색출해 내려고 얼마나 독을 쓰고 다녔는지 모르오. 안 그러면 우리 백운산 청년단이 당할 지경이었소.” 나는 처음으로 백운산 청년단이란 말을 들었다. 김일환은 백운산 청년단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백운산 청년단은 여러 마을 청년들로 조직한 단체인데 일본인들이 미호천 상류 골짜기에서 아까다마석을 캐내 가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 만든 단체라고 했다. 김일환의 말로는 백운산의 붉은 홍옥석이야말로 우리민족의 정기가 담긴 신령한 돌이라고 했다.

“이제는 어떻게 할 작정이오? 일경들이 가만히 안 있을 것인데.”

“내 일은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이나 잘 피해가면 되는 일이오. 당신도 이놈 옆에 쓰러져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어떻소? 그냥 쓰러져 있으면 믿지 않을 테니 몸에 상처를 좀 냅시다.”

김일환은 내 동의도 없이 곁으로 다가와 붉은 돌도끼로 내 뒤통수를 쳤다. 눈에서 불이 번쩍하며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눈을 뜬 곳은 병원침대 위였다. 간신히 눈을 떴는데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팠다. 머리에도 붕대가 감겨 있고 왼쪽 팔에도 붕대가 감겨 있었다. 내가 정신을 차리자 옆에 있던 아내가 큰 소리로 흐느껴 울었다. 나는 통증을 참아내면서도 아내의 울음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냉랭한 목소리로 울음을 멈추라고 말했다. 아내가 울음을 멈추자 의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의식이 돌아온 나의 얼굴을 보더니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만하기 천만다행입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습니다.”

의사는 자기가 죽은 사람을 살려낸 것처럼 자랑스럽게 말했다. 뒷통수의 충격으로 뇌진탕을 일으켜 의식을 잃은 뒤에 붉은 도끼날로 어깨를 찍은 모양이었다. 왼쪽 어깨에 뼈가 드러나도록 살이 찢겨 있었다. 잠시 후에 일본순사들이 병실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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