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청산이요 태(態) 없는 유수로다.
값없는 청풍이요 임자 없는 명월이라.
이 중에 병 없는 몸이 분별없이 늙으리라. -성혼(成渾)문집

 

근심걱정 없이 자연 벗삼아 살고파

▲ 한분옥 시조시인
▲ 한분옥 시조시인

가을은 고향을 멀리 둔 사람에게나 임을 멀리 둔 사람에겐 차갑다 못해 시린 계절이다. 가뜩이나 풀벌레 구슬피 우는 소리에, 따라 그리움과 외로움에 우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낙엽이라도 거리에 뒹굴면 기우는 달을 원망할 수밖엔 달리 방편이 없다. 이런 날 기타는 또 누가 뜯는지. 밤마저 길고, 꿈길마저 차갑겠다.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知者樂水)”고 논어에 전한다. 말없는 청산과 모양 짓지 않은 물을 벗하여 어느 누구도 값을 논하지 않는 맑은 바람에, 또한 밝은 달이다. 아무리 그 누가 잘 낫기로 저 달을 혼자 소유할 수 있는가. 못났던 잘났던 바라보는 사람이 임자인 것이 또한 달이지 않겠나.

이 속에서 어찌 세상의 욕심으로 근심 할 것인가. 근심걱정 다 버리고 산에 기대고 물에 마음 담고, 또 달은 둥실, 바람 또한 선들, 참으로 살만하지 않겠나.

엊그제 팔월 한가위를 지난 열이레 달이 둥실 대지를 비춘다. 달은 언제 보아도 의연하고 꾸밈이 없으니,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대상이다.

청산(靑山)과 유수(流水)가 대구(對句)되고, 청풍(淸風)과 명월(明月)이 대구(對句)가 반복되어 노래하기에 좋다.

천지간에 적막한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는 인간은 도심의 군중 속에서든 산중 홀로 사는 삶에서든 궁극엔 모두가 개체 자체로서 인간은 혼자다. 진즉 혼자라는 것. 열흘 붉은 꽃이 어디 있으며 피면 지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역사 속에 수많은 잘난 인걸도 간데없다. 그저 병 없는 몸이라면 또한 축복 일뿐, 하루하루 따지고 재지 말고 그냥 늙어 가고자 한다. 성혼(成渾)은 벼슬을 하였으나, 물러나서 자연과 벗하였고 율곡과 이기(理氣)의 학문을 서로 논하였다고 한다. 학자로서 달관의 경지를 노래하는 낭만 가객이었으니. 그는 시대의 자연인이었음이 분명하다. 한분옥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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