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부터 문화예술의 도시 울산
신라시대 왕족들의 나들이 장소이며
조선시대 행정군사의 중심지로 명성
이제 산업수도 넘어 예술문화도시로
뉴반구천 문화도시 울산, 변신 기대

▲ 박철민 울산대 교수 전 울산시 국제관계대사

지난달 울산시립미술관에는 20여개국 30여 명의 KDI 연수생들이 다녀갔다. 울산시와 KDI가 공동으로 주최한 ‘도시와 문화 : 문화유산, 협력, 혁신을 통한 미래도시 만들기’라는 제하의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 세종시에서 왔다. 같은 장소에서 10월27까지 열리고 있는 ‘반구천에서 어반아트로’ 국제 전시회까지 덤으로 즐긴 그들은 향후 몇 년 후 ‘뉴반구천’ 문화도시로 거듭 변모할 미래 모습을 보기 위해 다시 찾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필자는 그날 ‘울산의 현재와 미래 : 뉴반구천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이 순간에도 한국은 국제사회와 손을 맞잡고 한걸음 또 한걸음 도약하고 있다. 블룸버그 혁신지수, 선박, 석유화학, 반도체, 제조업 경쟁력, 특허출원, 자동차생산, 원자력발전, 교역규모, 방위산업 수출, 유엔분담금, 국가 브랜드 지수 등 국가 위상을 짐작하게 하는 다양한 항목에서 당당하게 1위부터 10위까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더해 공적개발지원(ODA) 총액에 있어서도 2026년말까지 10위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명실공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민주적인 모범국가 중 하나로 우뚝 성장해 있다. 지난 2018년부터는 세계에서 7개국만 자격을 갖춘 ‘30-50 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인구 5000만명 이상 조건을 충족한 국가)에도 당당하게 진입한 참으로 자랑스러운 나라다.

▲ 장생포 고래박물관앞 포경선 진양호에 그려진 토마 뷔유의 노랑고양이와 장생이.
▲ 장생포 고래박물관앞 포경선 진양호에 그려진 토마 뷔유의 노랑고양이와 장생이.

그렇다면 한국의 지난날들은 어땠는가? 1949년부터 유엔 가입을 줄곧 추진해 왔으나, 냉전 시대 공산 진영의 거부권 행사로 실현되지 못했고 1970년대 중반부터는 아예 상정조차 포기하였다. 88년 서울 올림픽과 구소련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으로 전환점을 맞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북방외교 구현을 통해 마침내 1991년 9월 유엔 가입이라는 숙원을 이루었다. 그 이후 30여년 동안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1996~97), 제56차 유엔총회 의장국(2001~02), 8대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2006~16), 안보리 2번째(2013~14) 그리고 3번째 진출(2024~25)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자랑스럽게 숨 가쁜 속도로 써내려 가고 있다.

그렇다면 울산은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부산 출생인 필자가 부모님의 등에 업혀 공업 입국의 국가적 사명을 부여받고 막 태동한 울산으로 옮겨 왔던 1960년대 후반엔 옥교동과 성남동 구시가지 인근을 제외하고는 논과 밭을 이웃으로 한 허허벌판 황무지였다. 장생포와 방어진은 수산업으로 나름대로 활기를 띄고 있었지만 교통 애로 등으로 쉽게 건너 가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그런 울산이 세계의 산업수도로 변모했다. 지난해 울산시 국제관계대사로 재직한 첫날 눈길을 사로잡았던 김두겸 울산시장 접견실 문 앞에 걸려있는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치사문’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박물관에 비치되어있는 ‘원조물자의 부정처분은 극형에 처한다’라는 섬뜩한 포고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용해 소개하고 있다.

▲ 세계적인 어반아티스트 빌스(Vhils)가 재능기부한 울산문화예술회관 앞 암각화.
▲ 세계적인 어반아티스트 빌스(Vhils)가 재능기부한 울산문화예술회관 앞 암각화.

공업센터 기공식 치사문 중간쯤 ‘2차 산업의 우렁찬 건설의 수레 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으로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검은 연기가 마구 뿜어져 나와 태양이 가려지고 매캐한 냄새가 가득 차야 우리에게 밝은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캐치프레이즈이지만 그때는 통했다. 매년 6월1일 개최된 공업축제 퍼레이드와 함께, 어린 초등학생이었던 필자에게 공업 입국의 기치는 국가 미래를 걸머진 공업도시에 살고 있다는 자긍심을 고양시켜 준 자랑스러움이었다. 이제 울산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부자도시다.

오염된 태화강으로 인해 기름으로 범벅된 비둘기가 안쓰러웠던 적이 있었고, 잡을 수도 먹을 수도 없었던 황어와 연어가 되돌아온 생태도시로 변화했다. 2028년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릴 즈음엔 아마도 세계 유수 대학 초청 조정 경기뿐만 아니라 태화강 국제 수영대회도 개최되지 않을까?

울산은 원자력, 석유화학, 비철금속, 자동차, 조선산업에서 세계 굴지의 위상을 가지고 있고, 향후 수년 내 수소, 해상풍력은 물론 2차전지 분야까지 망라해 그 위용을 떨칠 것이다. 재생에너지와 수소, 원자력으로 생산된 청정에너지원은 RE100 참여기업 확산과 분산에너지법 시행과 발맞춰 전기 소비가 큰 반도체, 바이오, 데이터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는 동인이 될 것이다.

울산은 본래 문화예술의 도시였다. 7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석기시대 울산인들은 고래산업에 종사했고, 예술가들은 반구대 암각화를 남겼다. 신라시대 왕족들의 나들이 터였고, 고려와 조선시대엔 문예가들이 앞다투어 방문했던 곳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울산은 경상좌도병마절도사(병영), 경상좌도수군절도사(개운포 수영)와 울산도호부가 있었던 행정군사 중심지였고 경상도 최대의 농수산, 특히 염전과 고래 산업도시였다. 부유한 만큼 풍류, 문화와 예술이 번성해서 도시 곳곳에 화려했던 과거 영광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이제 울산은 예술문화도시로서의 명성을 되찾아야 한다. 울산시립미술관에는 지난 6월27부터 10월27까지 국제적으로 저명한 어반아트 작가 7명의 300여 작품들이 전시중에 있다. 그중 존원(미국), 토마뷔유(스위스), 빌스(포르투갈)가 울산을 방문해 반구천 암각화의 유네스코 등재를 기원하며 재능기부 작품을 남겼다. 10월 중순에는 OBEY로 알려진 셰퍼드페어리의 방문도 예정돼 있다.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울산시민들의 관심도와 호응도가 탄력을 받게 된다면 뉴반구천 문화도시 울산의 재탄생이 그만큼 빨리 다가올 것이다.

박철민 울산대 교수 전 울산시 국제관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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