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정당성 확보와 사법신뢰 제고
배심제도·법관선거제의 취지는 같아
사법권력 행사의 민주적 정당성 중요

▲ 이준희 미국변호사

담당하고 있는 사건 중에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한 지방법원에서 진행 중인 민사소송 건이 있다. 다음 주에 변론기일이 예정되어 있는데, 기일이 열리는 법정의 풍경이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부분은 12명의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재판 진행에 참여하기 위한 좌석(jury box)이 법정 입구 기준으로 원고 옆 오른쪽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재판을 주재하는 주 법원 판사들이 시민들의 선거로 선출된다는 사실 역시 우리나라의 직업 법관 선발제도와 크게 다른 점이다. 오늘은 이 두 가지 제도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미국의 법관 선발제도는 주마다 법으로 달리 정할 수 있다. 선발 방식은 크게 5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주지사가 임명하는 방식, 주의회가 선출하는 방식, 정당이 공천한 후보자를 유권자들이 보통선거에 의해 선출하는 방식, 당적을 표시하지 않은 후보자에 대해 유권자들이 보통선거로 선출하는 방식, 그리고 선거제와 임명제를 절충한 다소 복잡한 방식으로, 법관지명위원회가 복수 후보자를 추천하고 주지사가 그중 1명을 임명하여 일정 기간 근무하게 한 후 유권자들로 하여금 유임 여부에 대한 찬반의 인준 투표를 통해 최종적으로 선발하는 실적위주 선발제도가 그것이다. 미국 텍사스주 법원은 이 가운데 세 번째 방식인 정당입후보 선거방식(partisan ballot)에 의한다. 참고로 주 법원 판사의 약 80%가 선거를 통해 임명된다.

유권자 시민들이 특정 정당원으로서 입후보한 판사를 선출한다는 개념은 우리로서는 경험한 바 없기에 설명을 들어도 실감하기가 쉽지 않다. 소속 정당을 표방할 수 있고 선거에 의해 선출되므로, 당연히 후보 간 치열한 선거운동을 거치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선거운동이 어느 범위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온다. 이와 관련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2002년 미네소타주 공화당 대 화이트 사건에서 판사 후보가 선거기간 중 논란이 있는 법적·정치적 의견을 주장하는 것을 금지하는 주법이 위헌이라고 판시함으로써 판사 선거에 정치성이 드러나는 것을 허용했다. 연방대법원의 이러한 태도는 판사가 법을 만드는 미국 사법체계의 현실을 판사 선거라는 제도가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인데, 우리나라와 달리 법원이 생성하는 판례의 법원성(法源性, case law)이 인정되므로, 판사 입후보자들에게도 의회 의원 선거에 입후보하는 이들과 같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유권자들이 이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심제도의 경우, 우리나라는 형사재판에 있어 배심원이 직업 법관으로부터 독립하여 유·무죄의 판단에 해당하는 평결(verdict)을 내리고, 법관은 그 평결에 따르는 제도인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이름으로 2008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만 2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면 특별한 법률 지식이나 경험, 자격이 없더라도 배심원이 될 수 있으며, 5명에서 9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의 일원이 되어 평결을 내리게 된다. 현행법상 배심원의 평결에는 기속력(羈束力)이 없고 단지 권고적 효력만이 있다(동법 제46조 제5항). 참고로 일본의 경우 지난 2009년부터 재판원제도(裁判員制度)라는 이름으로 6명의 재판원이 직업 법관과 함께 재판부의 일원으로 참여해 직업 법관과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사실문제 및 더 나아가 법률문제를 판단하는 참심제로 운영되고 있다.

배심제도와 법관 선거 제도는 그 취지가 같다.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와 사법의 신뢰 제고’가 그것이다(국민참여재판법 제1조). 이제는 언론 기사를 통해 자주 소개되는 법원 판결에 대한 문제 제기의 수준이 아직은 결과에 대한 불만이나 재판부를 비난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는 이를 넘어서 직업 법관만으로 구성된 재판부의 재판절차가 민주적 정당성의 측면이 취약하다는 비판을 감히 할 수 있어야 한다.

독일 법원의 판결문에는 ‘Im Namen des Volks’(국민의 이름으로) 라는 문구가 상단에 명시되어 있다. 사법권 독립 만큼이나 사법 권력 행사에 있어서도 민주적 정당성이 전제되어야 하며 국민주권의 원리에 예외일 수 없다는 간명한 예이다. 우리도,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되는 변화가 머지않은 미래에 있길 바란다.

이준희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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