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재성 노인이 기록에서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글 밑에 그려 넣어 놓은 문양을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헤맨 끝에 두 사람이 엉켜있는 듯한 문양을 찾아냈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이하우 교수에게 직접 물어 볼 생각이었다. 학자들이 문양 하나가 한 문장을 나타내는 해독법에 수긍을 할지는 미지수였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조바심이 일었다. 이번에도 아내에게 잔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어제 저녁에 전화를 두 번이나 걸었는데 왜 받지 않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서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평상시에는 아내가 잠에서 깨어 있을 시간이었다. 내가 집에 있을 때는 아침밥을 거르는 일이 없었다.

거실에 들어서자 소파 위에 아내가 잠들어 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롱패딩을 벗어 이불대신 덮고 잠들어 있었다. 현관문 여는 소리에도 깨어나지 않는 걸 보니 늦게 들어와 잠들어 있는 게 분명했다. 아내를 깨우지 않으려고 발소리를 줄여가며 조심스럽게 욕실로 찾아들어갔다. 아침 샤워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따뜻한 물을 틀어 샤워를 하니 몸이 개운했다.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아내가 깨어 있었다. 아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 어딜 갔다가 늦게 들어와서 소파에서 잠을 잔 것이냐고 물었다. 아내는 내말을 듣더니 빙그레 웃었다. 분명 적반하장이라 가소롭다는 뜻이었다.

“어제 저녁에는 왜 전화를 받지 않았어?”

“전화를 다 했어요? 어쩐 일이세요. 전화를 다 하고. 고마워요. 전화를 해주어서.”

나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말리느라 아내의 말투를 시비조로 알아들었다. 그러나 머리말리기를 잠시 중단한 사이에 아내가 소파에서 일어나 내 앞에 바짝 다가와 서 있었다.

“고마워요.”

아내는 양팔을 벌려 나를 안았다. 나는 예상치 못한 아내의 행동에 눈을 크게 떴다. 어쩐 일인지 아내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있었다.

“왜 이래?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

“네. 있었어요. 어제 형부가 죽었어요.”

나는 일순간에 몸이 굳어졌다. 아내가 형부라고 부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사촌 언니의 남편인데 나와 동갑내기였다. 사촌 언니도 동갑이니 두 부부가 모이면 셋이 동갑이었다. 우리는 사촌간이라도 사는 곳이 가까운 관계로 자주 만나 외식도 같이하고 술도 가끔씩 했다. 나이는 같아도 언니의 남편이니 함부로 말을 놓지는 못했다. 그래도 속마음은 서로 털어놓을 만큼 각별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그는 평생 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작년에 은퇴를 했다. 은퇴 후에 소일거리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에 손을 댔다. 색소폰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고 같이 은퇴한 사람들끼리 바다낚시를 다니기도 했다. 지난주에도 친구들과 같이 바다낚시를 다녀와서 우리 부부를 불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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