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고의 명필 여초 김응현 선생
애제자로 서울 오가며 서예공부하다
경상일보 창간 즈음 제호 요청 받아
여초 선생께 부탁, 예서체 제호 탄생
1997년 7월 ‘한글 전용 가로쓰기’로
지금의 한글 ‘경상일보’ 제호로 변경

▲ 유용하 서예가

경상일보와의 인연은 창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상일보사가 올해 창간된 지 35년이 되었으니, 필자와의 인연도 35년째다. 1989년 5월15일 경상일보사 창간에 즈음해 당시 김상수 사장, 김종수(나의 고교 시절 스승) 이사님으로부터 신문사 제호 요청을 받았다. 당시 필자는 당대 최고 명필로 추앙받는 여초(如初) 김응현(金應顯) 선생님이 운영하는 서울 동방서법탐원 1기생으로 주 1~2회 서울로 오가며 서예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필자는 고민 끝에 “울산 최초로 신문사가 생기는데, 신문 제호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말씀드렸다. 여초 선생님의 작품을 기부받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여초 선생님은 감사하게도 예서체 한자로 ‘慶尙日報’ 제호를 기꺼이 써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고맙고 감격스러운 선물이었다. 애제자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자 배려가 ‘慶尙日報’ 제호에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 여초 김응현 선생이 쓴 ‘慶尙日報’ 제호.
▲ 여초 김응현 선생이 쓴 ‘慶尙日報’ 제호.

창간 당일 스승님이 써준 ‘慶尙日報’ 제호로 경상일보 지령 1호 신문이 나왔다고 선생님께 알렸다. 여초 선생님은 “참 잘됐다”고 기뻐하셨다. 이 공로로 1989년 5월15일 경상일보 창간 기념식날 ‘행운의 열쇠’를 필자가 대신 받아 나중에 여초 선생님께 전해드렸다.

경상일보 제호를 만든 것을 계기로 여초 선생님과 울산 서예계와의 인연은 끈끈하게 이어졌다. 당시 경상일보사와 울산서도회 (회장 유용하)는 1989년 10월 신정동 경상일보 강당에서 여초 김응현 선생 서법 특강을 공동 개최했다. 여초 선생님은 ‘현대 서법의 발전과 그 문제점’을 주제로 각국 서예 특징을 소개하고, 한국 서계의 방향에 대해 제시했다. 최고의 서예가셨던 여초 선생님의 이 특강은 울산 서예 문화증진에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여초 선생님은 1927년 1월 서울에서 태어나 10세 무렵부터 붓을 잡기 시작해 각 서법을 두루 통렵해 독특한 그 나름의 일가를 이룬 당 시대의 대가이셨다. 2007년 2월1일 79세로 영면하였다. 동방연서회를 중심으로 그는 한국의 전통적인 서풍을 연구 복원할 것을 주장하고, 광개토대왕비의 고예(古隷)를 본뜬 예서 작품을 활발하게 썼다. 현재 강원도 인제군 만해로 여초서예관에는 ‘권농교서(勸農敎書)’ 병풍이 소장되어 있다.

아쉬운 일도 있었다. 여초 선생님의 글씨를 자랑스럽게 사용하던 경상일보사의 한자 ‘慶尙日報’ 제호가 1997년 7월15일자로 갑작스럽게 한글 ‘경상일보’ 제호로 바뀌었던 일이다. 광역시 승격일부터 ‘한글 전용 가로쓰기’를 시행한다는 안내와 함께 선생님의 작품이 사라졌다. 정말 못내 아쉽고 섭섭했다. 벌써 30년이 더된 일인데도 ‘慶尙日報’ 한자 제호가 사라진 그날의 서운함이 엊그제처럼 회고된다.

▲ 울산의 원로 서예작가 효남 유용하 작가.
▲ 울산의 원로 서예작가 효남 유용하 작가.

참고로 국내 최고의 일간지 조선일보(朝鮮日報), 동아일보(東亞日報)는 아직도 한자 제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는 해당 신문의 역사와 전통, 신문이 추구하는 가치와 문화를 반영하고, 나아가 독자들에게 친숙함과 신뢰감을 주는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여초 선생님께 사사를 받으며 울산에서 서예작가로 활동한 지도 어느덧 50년이 훌쩍 넘어섰다. 1972년 울산서도회 창립전 전시를 가진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원로작가’ 소리를 듣게 됐다. 지난 2018년에는 울산문화예술회관 원로작가 초대전을, 2022년에는 작품 활동 50주년을 맞아 울주문화예술회관의 ‘울주 아트 지역작가 초대전’을 가졌다.

필자의 고향은 남구 성암동 선수마을이다. 울산미포산업단지에 포함돼 7대째 살아오던 고향을 등지고 1992년 8월 중구 다운동으로 이주했다. 이후부턴 늘 고향이 그리운 ‘공해 이주 실향민’의 삶을 살고 있다. 2000년에는 경상일보 출판부와 함께 200년 이상 고향 마을을 지키다가 떠난 이주민 이야기를 담은 <마음의 고향 선수>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또 성암향우회 회장 명의로 ‘처용암과 개운포 영성지 보전에 대한 건의서’를 작성해 울산시장, 민자당 남구 지구 위원장 앞으로 보내는 등 지속적인 보전 노력을 전개했다. 그 결과 1997년 개운포 영성이 울산시기념물로 지정되고, 지난 8월에는 ‘울산 개운포 경상 좌수영성’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는 감격을 누렸다. 동무들과 함께 뛰놀던 고향 마을의 옛 성터가 국가 사적이 되기까지 30여년 세월이 걸린 셈이다.

경상일보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지역 문화 예술인의 긍지와 위상을 높여준 데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경상좌수영성 사적 지정, 실향민들을 위한 성암근린공원 조성과 망향탑 건립에 많은 도움을 준 데도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또 태화강 대숲 보전과 태화들 살리기에도 적극 나서 준 덕분에 울산은 지역 자연과 문화를 대표하는 국가정원 보유 도시가 됐다고 생각한다. 開雲山房 主人 曉南

유용하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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