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신이 나서 자기가 잡아온 감성돔을 자랑하며 손수 회를 떴다.

낚시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알았으면 진즉에 다닐 걸 그랬다고 안타까워했다. 앞으로는 시간 날 때마다 낚시를 다닐 것 같았다. 그는 지금까지는 회사에 다니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인 줄 알고 살았다고 했다. 아직은 삶에 대한 에너지가 펄펄 넘쳐흐르던 사람이었다.

내가 정신을 가다듬고 그의 사인에 대해 물었을 때, 아내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제 내가 김인후의 집에서 전화를 할 때는 언니와 둘이서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고 했다. 백화점이 문을 닫을 시간까지 쇼핑을 하고 나와서 카페에서 차 한 잔까지 마시고 헤어졌다고 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언니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갔다고 했다.

“형부는 식탁에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턱에 손을 괸 채 싱긋 웃고 있었어요. 숨도 쉬지 않고 몸은 이미 빳빳하게 굳어 있었지요.”

나는 아내의 설명을 마저 듣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입고 나왔다. 아내는 입은 옷차림 그대로 나를 따라 나왔다. 장례식장인 국화원으로 가는 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그렇게 팔팔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맥없이 갈 수 있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처형이 나를 보고는 목을 놓아 울었다. 세 사람의 동갑이라는 연대가 무너진데 대한 상실감도 은연중에 작용한 것 같았다. 그는 우리 곁을 떠난다는 어떤 언질도 주지 않고 저 혼자 훌러덩 떠나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는 빈 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고 했다. 식탁 위에는 막걸리 두 병이 비워져 있었다고 했다. 대작할 사람도 없이 두 병의 막걸리를 마시고 급성 심장마비로 즉사를 한 것이었다. 나는 사람이 그렇게 수월하게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코로나 사태로 조문객은 거의 없었다. 가까운 친척들만 장례식장을 지켰다. 하루 낮과 밤을 지내고 나니 바로 발인이었다. 화장장에서 나와 동갑인 손 위 동서가 한 줌 재가 되어 떠나갔다. 슬픔은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었고 남아 있는 자들도 언젠가는 떠나야한다는 사실이 더욱 우울하게 했다.

장례를 치르고 집에 들어왔는데 온몸이 찌뿌둥했다. 자리에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대로 씻지도 앉고 소파 위에 벌러덩 누웠다. 천정에 매달린 거실등이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 누워 있는데도 배를 탄 것처럼 몸의 중심이 일렁거렸다. 먼저 번에 유촌 마을의 미호천 개울바닥에 쓰러졌던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다급한 생각에 아내를 불렀다.

욕실에 들어가 씻고 있던 아내가 놀라서 맨몸으로 뛰어 나왔다. 방금 큰 일을 치르느라 놀란 터라 더 당황했다. 아내는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구급차부터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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