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입찰로는 예술적인 건축 어려워
국제공모·초청 등으로 건축가 선정하고
미술관 부지의 개념도 대폭 확장시켜야

▲ 정명숙 논설실장

광주에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이 10월 준공된다. 그러나 지상에는 솟아오른 건축물은 없다. 지하 10개 층에 주요시설을 넣고 지상은 공원으로 돼 있다. 다만 낮에는 자연채광을 하고 밤에는 공원에 빛의 향연을 제공하는 천창이 있다. 그래서 ‘빛의 숲’이라 불리는 이 건축물은 재미건축가 우규승씨의 작품으로 단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개관한 서울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도 건축물 자체가 단연 눈길을 끌었다. 이라크 출신의 영국 여류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했다. 이 건축물은 직선이 없다. 모두 곡선이고 비정형인 알루미늄 외장의 이 건물은 마치 우주선을 연상케 한다.

더 앞서 지난 2011년 9월에 개관한 부산 영화의 전당도 기둥하나에 축구장 1.5배 크기의 지붕이 얹혀 있는 ‘빅루프’가 단연 눈길을 끄는 건축물이다.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빅루프에는 LED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야외 특설무대에서 화려한 조명 쇼를 감상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쿱 힘멜브라우(Coop Himmelblau)사가 설계했다.

최근들어 달라지고 있는 우리나라 공공시설물들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공공시설물들은 모두 사각형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옆으로 길쭉하던 사각형이 위로 길쭉해졌고, 콘크리트 외벽이 유리 소재로 대체된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울산도 예외는 아니다. 울산시청이나 시립박물관 등 새 건물이 들어설 때는 ‘랜드마크’라는 말을 갖다붙이지만 랜드마크가 되기에는 너무 개성이 없다.

그래서, 조만간 새로 들어설 울산시립미술관은 그야말로 울산의 대표적 랜드마크가 됐으면 한다. 건축비나 규모가 앞서 말한 세 건축물에 비해 턱없이 적지만 건축가 선정 방법을 달리 하고 부지에 대한 인식을 바꾸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싶다.

앞서 말한 세 건축물은 ‘국제 공모’ 또는 ‘초청’이라는 방법을 통해 건축가를 선정했다. 가격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공개입찰이 아니라는 말이다. 공개입찰방식에서는 건축의 아름다움을 요구할 만한 건축가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어렵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상하이엑스포 한국관을 지었던 조민석 건축가는 일전에 필자와의 통화에서 “공공시설물에 대한 공개입찰 방식에서는 새로운 건축을 선보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울산시립미술관은 적어도 국제 공모는 아니더라도 국내 공모를 통해서라도 예술공간 다운 건축물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부지에 대한 인식의 문제다. 전 울산초등학교 부지는 1만4814㎡로 그리 넓지 않다. 게다가 옛 동헌의 객사를 복원한다는 계획까지 잡혀 있다. 자칫 전시실 한두개를 갖춘 뻔한 건축물에다 건너편에는 객사 또는 남문루를 복원한다면 그 모양새가 어떨지 걱정스럽다. 문외한이긴 하지만 미술관 부지에 대한 개념을 대폭 확장해 동헌과 중부도서관은 물론 그 건물 사이의 골목길까지 미술관 부지로 보고 새로운 시각에서 일대를 리디자인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는 여유 공간이 부족한 원도심의 특성을 고려해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처럼 지하공간을 대폭 활용하고 옥상은 광장으로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도시의 성장과 특성은 건축물에 반영되기 마련이지만, 역으로 건축물이 도시의 성장과 특성을 이끄는 시대다. DDP를 설계한 하디드는 이를 건축에서의 ‘어버니즘’(Urbanism·도시주의)이라고 하고 “동대문운동장이 갖고 있는 지형적·역사적 특성과의 조화를 감안하다보니 건축물이 그 자체로 하나의 지형이자 인공적인 풍경이 됐다”고 말했다. 유럽여행의 대부분이 건축물 답사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울산이 미래 먹거리로 꼽는 관광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랜드마크가 될 건축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명숙 논설실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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