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울산역 인근은 감성마케팅 최적지
홍보글씨 뗀 자리 암각화 모형 설치해
관광도시 울산 홍보하는 도구 활용해야

▲ 정명숙 논설실장

지난달 11일, 점심 식사를 위해 언양으로 가던 길이었다. 도로 옆 언덕 비탈에서 ‘근대화의 메카 선진화의 리더로’라는 커다란 글씨를 걷어내고 있었다. ‘근대화의 메카’는 이미 덜어냈고 ‘선’자를 떼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그 현장에서 ‘정권 교체’(政權交替)를 실감했다. 동시에 정권 교체가 단순히 권력의 중심이 바뀌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정치 권력을 바꾸는 것은 곧 주민의 정서를 변화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가 누구를 선택한다고 생각했던 투표가 우리의 감성을 바꾸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필요로 했던 일이었던 것이다. 특히 자치단체장의 교체는 나쁜 방향이든 좋은 방향이든 감성의 변화를 갖고 오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근대화의 메카, 선진화의 리더로’라는 문구가 필자의 정서에는 매우 거슬렸다. 구호를 내건 사람의 울산에 대한 자긍심은 이해가 되지만 울산의 관문에 그런 문구까지 내걸어 도시 이미지를 획일화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뿐만 아니다. 선암호수공원에 있는 ‘자랑스런 남구…’라는 글 앞에서도 고개를 돌리게 된다. 숲속에, 댐 가에, 또는 다리 위에 자리하고 있는 ‘K-WATER’ 또는 ‘자연보호’ 등의 커다란 글씨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좁은 등산길 앞사람의 배낭에서 요란하게 흘러나오는 뽕짝을 들으면서 싫은 내색도 못하고 뒤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을 때처럼 곤혹스럽다. 교통섬이나 공원 등에 라이온스, 바르게살기, 로타리 등이 새겨놓은 훈계조의 문구를 담은 비석이나 표지판도 마찬가지다. 마치 세뇌를 시킬 양, 끊임없이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감정을 불편하게 하거나 울컥 화를 돋우는 이런 것들을 총칭해서 ‘감성 공해’(感性 公害)라 하고 싶다. 인체에 해가 얼마나 있는지 정확하게 수치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부당한지는 모르겠으나 대기 공해나 수질 공해, 악취 공해, 소음 공해에 버금가는 불편을 주는 것만은 틀림없지 않을까.

아마도 울산시는 앞으로 그 자리에 다른 구호로 채우지는 않을 모양이다. 다행이긴 하지만 그 자리가 울산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감성 마케팅’의 명당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가만 내버려두기에는 아까운 면이 없지 않다.

그래서 제안한다. 그 자리에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 모형을 만들어 앉히기를. KTX울산역에서 나오면 바로 바라보이는데다 국도를 지나면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암각화의 도시’를 홍보하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가 아닌가 싶다. PVC 등 가벼운 소재로 반구대 암각화의 실물 보다 더 크게 만들어서, KTX울산역에서 볼 때 실물크기로 보여질 만큼의 크기로 만들어 설치해 놓는다면 울산의 이미지 메이킹을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암각화는 울산이 공업도시라는 한정된 이미지를 벗어나 한반도의 역사와 궤를 함께하는 문화유산의 도시로서 명성을 높여주기에 충분하다. 관광산업의 가장 좋은 소재라는 말이다. 그 경사면에 암각화 모형을 설치한다면 KTX울산역에서 암각화 모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포토존을 만들어도 좋다. 암각화에 대한 설명을 해놓은 안내표지판과 유적현장으로 갈 수 있는 안내도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간다면 ‘ulsan for you’라는 글씨가 박혀 있는 옆쪽 언덕에는 천전리 각석을 만들어 놓는 것도 고려해볼 만한 일이다.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은 우리 선조가 울산에 주신 최대의 선물이다. 암각화를 세계에 자랑하는 것은 마땅히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소명이다. 하지만 울산시는 아직 그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방안 강구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고만 있다. ‘감성 공해’에서 벗어난 장소를 ‘감성 마케팅’의 적재적소로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싶다.

정명숙 논설실장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