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계절은 다시 전환의 시점이다. 절기상의 시간은 겨울에 접어들었지만 가을의 끝자락을 붙들고 신음하는 마지막 잎새처럼, 만추의 서정은 쉽게 전환되지 않는다. 잘 익은 호박이 하나 둘 가을 들녘에서 사라지고 나면 어김없이 겨울이 찾아왔다. 내일이면 어느새 입동(立冬)이다.

호박은 별 보살핌 없이도 잡초처럼 자라나 잡초처럼 결실을 맺었다. 누렇게 늙어가는 호박을 보고서야 우리는 추수가 다가왔음을 직감했고, 추수가 끝나면 곧 겨울이었다. 시간과 함께 늙어가는 것들은 대부분 가벼워진다. 하지만 호박은 예외다. 호박은 늙어가면서 점점 무거워진다. 늙은 호박의 당당한 겉모습은 그들의 거친 삶을 대변하고 있을 테지만, 호박의 내면은 포근하고 향기롭다.

호박의 향은 호박죽의 경험과 감정을 자극한다. 호박죽의 맛은 달면서도 향기로웠고 단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 우리는 호박의 단맛에 훅하고 빠져들었다. 늙은 호박의 살(肉)과 쌀로만 끓인 호박죽은 식으면 살짝 굳어지는데 이때 단맛과 향은 더욱 강해져서, 겨울에 먹던 식은 호박죽의 이 맛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자 추억이다.

늙은 호박에는 부드러운 섬유질이 풍부하여 장 건강에도 좋지만, 베타카로틴이라는 항산화 영양소가 풍부하다. 베타카로틴은 우리 몸의 면역기능을 증진시키는 중요한 영양소다. 우리 몸의 면역계는 한 가지 일에 기여하는데, 바로 몸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찾아내고 필요하다면 죽이는 일이다. 병균을 상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암세포나 이물질도 찾아내어 제거한다. 이맘때 흔하게 먹었던 호박죽에 우리 몸의 면역기능을 향상시키는 영양소가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항산화 영양소 중에는 우리 몸에 얼마나 필요한지 아직 모르는 것들도 많지만, 베타카로틴은 호박죽과 같은 음식을 통해서 충분한 섭취가 가능하고, 이들 영양소는 음식을 통해서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절기상의 시간은 속일 수가 없어 입동이 지나면 기온은 떨어질 것이다. 우리 몸의 면역계는 추위에도 반응하여 추위에 노출되면 면역기능은 떨어진다. 감기나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이 훨씬 더 높아지는 것이다. 면역기능 향상을 위한 베타카로틴의 섭취는 자주 먹는 호박죽으로 충분하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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