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없이 당선 횟수 따른 합종연횡
선수 따른 당내기득권 불평등 인정
짧은 경력으로도 요직 맡는 풍토를

▲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언제였던가, 모학회 평의원에 처음 당선돼 회의에 참석했다. 참석자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인사를 하는데, 한사람이 ‘김초선(初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얼핏 삼국지의 적토마장군 여포의 아내를 떠 올렸으나, 알고 보니 평의원에 처음 당선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그 옆의 사람은 ‘이재선(再選)입니다’고 소개하고, 그 옆 사람은 ‘박다선(多選)입니다’하면서 삼선(三選)이상은 다선이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날 테이블 끝자락에 앉았던 나는 테이블의 중앙부에 앉은 다선의원들 앞에서 꽤나 조심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지난 4월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끝나자마자 선거결과를 놓고 여야할 것 없이 반성과 각오, 지도부개편이라는 소위 ‘쇄신세리머니’가 줄을 잇고 있다. 선거에서 이긴 야당은 ‘우리가 잘해서 이긴 게 아니다. 정부여당이 국민으로부터 심판을 받아 그들이 스스로 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만해서는 안 되며 더욱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라는 각오 일색이다. 한편 완패한 여당은 ‘우리가 오만했다. 지난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므로 국민은 늘 우리 편이라고 오판하고 마구 질주한 측면이 있다. 국민들께 머리 숙여 사과하고 모든 면에서 거듭나야 한다’라며 소리 높여 반성한다. 그런데 국민은 이러한 행위가 일련의 이벤트성 코미디 쇼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안다.

‘음식을 배우려면 중국에 가고, 당구를 배우려면 벨기에에 가고, 춤을 배우려면 브라질에 가고, 정치를 배우려면 한국에 가라’라는 말이 있단다.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기아선상을 벗어나 ‘산업화’를 이룬 역사도 갖고 있으며, 역시 단기간에 ‘민주화’를 이루면서 변화무쌍한 정치상황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 숨가쁜 과정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이제는 국민모두가 반정치인이 되었다. 웬만한 정치꼼수나 정치 쇼에는 속지 않을 만큼 총명하다. 60여 년 전엔 막걸리나 고무신에 속았지만 이젠 그보다 훨씬 더 실속 있는 현금봉투나 훨씬 더 피부에 와닿는 동태탕에도 속지 않는다.

반성의 내용이나 진실성 정도는 물론 새로운 지도부에 대한 기대나 궁금함조차 애초에 없는 나는 이러한 반성쇄신정국(反省刷新政局)을 색다른 각도에서 관전한다. 어차피 선거가 끝나면 늘상 이루어지는 요식행위이며, 마치 과음한 다음날 아침에 느끼는 처절한 후회와 비장한 절주(節酒)결심처럼 이른바 작심반나절행위요, 지도부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이 뻔할테니 말이다. 오히려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반성주체와 방식이다.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 점이다. 첫째는 언제부터 국회의원이 초선모임, 재선모임, 3선모임, 4선 이상 중진모임으로 나눠졌냐는 것이다. 당선 횟수가 많을수록 국회의사당에서 뒷좌석을 차지하는 것까진 이해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국민 어느 누가 이렇게 집단을 나누는 것을 허락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이러한 모임 쪼개기를 달리 표현하면 당선횟수, 즉 선수(選數)에 따른 당내기득권의 불평등이 존재하며, 의원들 스스로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음을 실토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민주정당이 아니라는 점을 자인하는 것이다. 세상 어느 나라 국회에 초선의원, 재선의원, 삼선의원들이 따로따로 모여 의견을 내던가. 초선의원이나 중진의원이나 국민이 보기엔 똑같은 의원일 뿐인데, 의원 위에 의원 있고, 의원 밑에 의원 있는 것으로 비쳐져 참으로 ‘웃프기’ 그지없다.

둘째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생각조차도 당선횟수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같은 당이라 하더라도 의원별로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아니 오히려 달라야 자연스러운 법, 그리하여 사안별로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합종연횡(合從連橫)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런데 선수가 같으면 생각이 같고, 선수가 다르면 생각도 달라야 하는 것인가.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비겁하게 무리 속에 숨지 않고 출중한 실력과 번뜩이는 소신발언 등을 통해 중진들을 압도하는 몇 안 되는 초선들이 그래서 빛나는 것이다.

정당 안에 이념이나 출신지역, 인간관계 등에 따라 A의원파, B의원파로 나누어져 세력화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어쩌면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오히려 아무리 선수가 많더라도 파벌을 만들지도 못하고, 파벌에 속하지도 못하여 안타깝게도 정치생명이 끝난 사람도 적지 않다. 반면에 초선모임, 재선모임, 중진모임 등은 마치 김씨모임, 이씨모임, 1학년모임, 2학년모임과 같이 명분도 의미도 없고 유치할 따름이다. 프랑스 마크롱의 예에서 보듯이, 정치경력도 짧고 당내 세력기반이 약해도 새로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대통령을 낳게까지 하는 역동적인 정치풍토가 부럽다.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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