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재보선 ‘내로남불’ 응징한 울산시민
많은것 할 수 있는 유권자의 힘 깨달아
깃발 거부하고 희망의 열린 사고 시작

▲ 정명숙 논설실장

4·7재보궐선거는 비록 전국에서 21명을 선출하는 작은 선거였지만 우리 정치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2016년 20대 총선을 시작으로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20년 21대 총선까지 연달아 4번의 선거를 모두 승리로 장식했던 민주당이 패배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21곳의 선거구에서 겨우 4곳만 이겼다. 서울·부산 광역단체장 2곳과 울산남구·경남의령 기초단체장 2곳을 비롯해 시·구의원까지 모두 15곳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다. 2곳은 무소속이 차지했다. 국민의힘의 압승이다.

우리 정치사를 보면 민주적으로 선거가 이뤄진 이후 10년을 주기로 보수와 진보가 차례로 집권을 해왔다. 지금은 진보 집권 5년차다. 내년 3월에 대선이 있다. 전례대로라면 진보가 재집권할 차례다. 그런데 국민들은 이번 보궐선거를 통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더불어민주당에 경고장을 보냈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에 대한 온전한 지지도 아니다. 언제든 거둬들일 수 있는 차선(次善)임도 분명히 암시했다. 국민의힘이 하기 나름이겠으나 지금 하는 걸로 봐선 독배(毒杯)가 될 가능성도 적잖다.

4·7재보선이 내년 선거의 가늠자인 건 분명한데 결과는 예측불허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은 아직 재보궐선거에 담긴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날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하나같이 입으로만 개혁을 앞세울 뿐 여전히 ‘내로남불’이다. 당권경쟁에 혈안이 돼 불과 20여일 만에 ‘다만 편히 살게 해 달라’는 국민의 아우성을 깡그리 잊어버린 듯하다. 진보든 보수든 상관 안 할 테니 ‘정의’롭게 돈 벌 수 있는 일자리와 ‘공정’하게 노력해서 내 집 장만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바로 4·7재보선에 담긴 국민의 간절한 열망이다.

울산도 마찬가지다.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단체장을 모두 보수에서 진보로 갈아치웠던 울산시민들은 다른 지역 국민들보다 조금 더 빠른 지난 총선에서부터 보수로 돌아섰다. 21대 총선에서 전국적으로는 180석이라는 거대여당을 만들었으나 울산은 6곳 중 5곳을 국민의힘으로 바꾸었다. 이어 이번 재보선에서도 남구청장을 국민의힘으로 되돌려 놓았다. 국민의힘 서동욱 후보의 득표율은 무려 63.73%나 됐다. 민주당 김석겸 후보는 겨우 22.15%에 그쳤다. 41%P이상 차이가 났다. 울주군 나선거구(범서·청량)의 유권자들도 국민의힘을 선택했다. 범서읍은 근래 들어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면서 젊은 층이 많은 지역으로 최근 5년간 4차례 선거에서 모두 민주당이 우세했던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울산은 보수의 텃밭인 영남에 속하긴 하지만 원래 야성이 강한 도시다. ‘노무현 바람’이 울산에서 시작됐고 어느 선거에서나 1~2 지역구 이상은 진보 정당에게 내줬다. 그런데 왜 다른 지역보다 더 빨리 ‘보수 회귀’를 선택했을까. ‘구관이 명관’이라는 판단도 아니고 새삼 보수에 대한 기대도 아니다. 전국적인 정권심판론이 작용한 탓도 있겠으나 여전히 자기정치를 위해 내편 챙기기에만 몰두해 있는 지역민주당에 대한 심판이 더해진 결과다.

확고한 것은 유권자들이 ‘깃발’을 거부했음이다. 파란색이든 빨간색이든 무작정 ‘나를 따르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 일사불란하게 모이기를 거부한 것은 분명하다. 한때 ‘고무신’에 쏠깃했으나 조금은 객관적인 ‘정당’을 좇다가 이제 ‘정의’를 추구하는 유권자로 진화하고 있다. 변심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국민의힘을 선택했던 그들이 민주당을 선택했다가 또다시 국민의힘으로 돌아섰다. 동시에 내년 선거에서는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음을 선언했다. 유권자들은 충분히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많은 것이 결국 유권자들에게 달려 있음도 알게 됐다. 생각이 달라져서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것은 변절이 아닌 열린 사고다. 그 누구도 변심을 탓할 자격은 없다. 깃발을 거부한 국민들에게서 우리 정치의 희망을 엿본다.

정명숙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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