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과 경륜 겸비한 프로페셔널
핵심관통 간결체 선호하는 대중
‘윤여정 신드롬’ 원천 솔직담백

▲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1984년 일본에서 ‘프라이데이(Friday)’란 주간지가 최초로 발간되었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많이 팔린다고 하니 생명력이 꽤 긴 편이다. 무언가 읽는데 있어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일본 사람들도 20세기 후반 들면서 두꺼운 책 읽는 것을 조금씩 꺼리는 양상이 나타나자 생겨난 게 바로 이 주간지이다.

이 잡지는 매주 금요일 발간되는데 지난 일주일 동안 국내외에 있었던 각종 뉴스, 특히 연예관련 뉴스를 중심내용으로 한다. 한 페이지에 사진 한 장과 간단한 사진설명을 넣어, 몇 십 페이지를 묶어 내놓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니까 이 잡지를 읽는 데는 길어도 10분이 채 안 걸린다. 지난 한주동안 일어난 일들을 단 10분 만에 다이제스트한다는 얘기다. 늘 시간에 쫓겨 바쁘게 살아가지만 국내외 뉴스에도 무관심할 수 없는 현대인들의 사정과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주간지라 평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선데이서울’ ‘주간경향’ 등 비슷한 형식의 주간지가 있었지만,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펴놓고 읽기엔 꽤 낯부끄러운 내용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래가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아무튼 현대인들은 복잡한 내용을 가능한 짧고 명쾌하게 표현하고 싶어 하고 나아가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과 방식을 선호한다. 요컨대 상황을 장황하게 자세히 설명하는 만연체보다, 핵심을 찌르는 상징성 농후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간결체를 선호한다는 뜻이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 ‘학(鶴)이여!’라는 잡지도 최초 발간됐다. 이 잡지는 비록 오래가진 못했지만 당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잡지사는 신춘문예 등에 투고했다가 낙선한 글들을 실어준다고 광고했다. 원고료는 물론 없으나 작가의 입장에선 자신의 글이 실리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다. 잡지사는 그저 대표와 사원 한명으로 충분하여, 투고되어오는 글들을 적당량 모아 인쇄소로 넘기면 됐기 때문이다.

그 잡지사의 대표는 ‘현대인들은 프로의 글은 너무 읽어 식상했을 것이다. 조금 모자라지만 참신한 아마추어의 글들을 모아 잡지를 만들면 아마 수많은 독자들이 환호할 것이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완벽함보다는 모자람, 프로의 익은 냄새보다는 아마추어의 풋냄새가 현대인이 더욱 바라는바 일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원고료가 거의 안 드니 매출액이 곧 순이익이라고 오판했던 것이다. 처음 몇 달간 꽤나 이목을 끌었던 이 실험은 얼마안가 보기 좋게 실패했다.

역시 현대인은 마음속 깊이 프로를 원했던 것이다. 예술도 스포츠도 문학도 그 세계의 주인공은 실력과 경륜을 겸비한 프로페셔널들이었다. 아마추어가 차지할 공간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보졸레누보(Beaujolais Nouveau)’ 와인 가지고 ‘그랑크루클라세(Grand Crus Classe)’ 와인을 이겨보고자 대항했던 것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 하고 싶은 말이라고 구구절절 자세하게 늘어놓는 대신, 모자란 듯 짧고 간결하게 핵심만을 표현하는 진짜 프로에게 현대인들은 열광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바로 그 간결한 표현 속에서 프로의 내공(內空)을 읽는다. 진정한 프로의 말은 짧고 쌈박하다는 뜻이다. 성철(性澈)스님의 ‘산은 산이로되, 물은 물이로다’가 그것이요, 김수환 추기경의 ‘나는 바보입니다’가 그것이다.

목하 우리나라엔 ‘尹며들다’ ‘오스카의 여인’ 윤여정(尹汝貞)신드롬이 식을 줄 모른다. 그 신드롬의 원천도 바로 그것이다. ‘아들들에게의 고마움, 생존을 위한 연기’ 라는 솔직담백함, ‘겉까속따(겉은 까칠해보여도 속은 따뜻한 사람)’라는 극간결의 자신표현, ‘나는 개가 아니다’라는 함축성 있는 도발적 유머, 드레스에 공군점퍼라는 개성 있는 ‘믹스 앤드 매치’….

이 모든 것들에 그녀는 구질구질한 설명을 달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아주 짧은 단어들로 그냥 던질 뿐이다. 대중에게 이런 느낌과 저런 생각을 가져달라고 애써 강요하지 않는다. 느낌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대중이라는 점을 그녀는 프로의 본능으로 안다. 오스카상의 영예를 안은 자랑스러움, 여기까지 오면서 겪었던 어려움에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나 그녀의 당당한 프로정신은 그러한 모습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오스카상은 그녀의 진면목을 보여준 하나의 동기를 제공했을 뿐, 그녀 자신에게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영화사엔 윤여정이 오스카상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윤여정과 같은 프로가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부각되어야 할 것 같다.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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