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향기는 매력에서 나오며
매력은 취미와 관심사에서 비롯돼
‘매력을 갖추는 일’에 관심 쏟아야

▲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 음악이론가

그 옛날 해군사관학교 교관시절 어느 날, 한 생도(生徒)가 나의 연구실을 힘차게 똑똑똑 두드린다. 문은 반드시 세 번 두드려야 하고 방안에 있는 상관은 “뭐야?”라고 묻는 것이 규정이다. 그는 “네, 4학년 000생도, 교관님께 용무 있어 왔습니다. 들어가도 좋습니까?”하고 큰소리로 딱딱 끊어 말한다. “들어와!”하니 모자를 왼쪽 품에 안고 들어와 내 앞에 앉았다. 키 크고, 잘생기고, 성적도 우수한 생도였다. 나중에 참모총장이 되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의 뛰어난 젊은이였다. 그는 앉자마자 곧은 자세와 출중한 외모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입을 열었다.

“주말에 상륙(上陸, 해군에선 외출을 상륙한다고 한다)하면 데이트하는 여학생이 있습니다. 사귄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첫눈에 반했습니다. 저는 늘 주말이 오기만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런데 며칠 전 그녀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갑자기 절교(絶交)하잡니다. 청천벽력이 따로 없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교관님은 일반대학을 나오시고, 여대생들의 심리를 잘 아실 것 같아 뭐가 문제이고 어찌하면 좋을지 여쭈어보려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남녀가 손을 잡거나 팔짱이라도 끼었다면 장래를 약속한 관계로 인식되던 당시의 고루한 연애분위기를 감안하면 사관생도들의 이성에 대한 이해와 표현수준은 말해 무엇할까?

내 코가 석자였던 내가 물었다. “만나면 서로 무슨 이야기 하나?” “그녀는 영화, 음악, 책이야기 등을 많이 하는데 말입니다, 저는 사관생도의 병영생활이야기, 임관(任官) 후 군(軍)생활에 대한 각오 등 군대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내가 물었다. “그동안 줄곧 그랬나?” “네 그렇습니다. 사실상 저는 그 주제 외에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그녀는 처음 몇 번 만날 때는 재미있어 하더니 최근엔 싫증을 느끼는 것 같긴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에게 거의 결론적으로 말했다. “그녀를 잊게! 자네는 아직 이성을 사귈 준비가 안 되어 있네. 만일 자네에게 홀딱 빠진 여성이 만날 때마다 다이어트이야기만 한다고 생각해보게. 만나는 게 악몽이지 않겠나. 연애를 하려면 다양한 화제를 가지고 흥미롭게 대화를 이끌 수 있어야 하며, 그 화제는 다양한 취미(趣味)와 관심사(關心事)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지. 자네가 분위기를 리드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길 때 연애를 시작해도 늦지 않네.”

나는 이후 대학에 입학하는 신입생, 재학생은 물론 청년들에게도 늘 같은 이야기를 한다. “자네는 제일 잘하는 게 뭔가?” “남들에게 내세울만한 특장점이 뭔가?” 그러면 우물쭈물하다가 대답하는 것은 대체로 “근면성실하고 예의가 바르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또는 “CAD와 선박설계입니다.” 등 생활태도나 성격에 관한 것 내지는 직업 관련 전문성을 대답한다. 이어서 나는 묻는다. “그러면 그 다음에 내세울만한 두 번째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노래를 잘합니다. 기타를 잘 칩니다. 축구를 잘합니다. 책을 많이 읽습니다. 사진을 잘 찍습니다. 요리를 잘합니다. 춤을 잘 춥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의 결론은 이러하다. 물론 짧지 않은 생을 살아본 경험에서 얻은 바이기도 하다. 첫 번째 잘하는 것은 나와 가족을 먹고 살게 해 주지만, 두 번째 잘하는 것으로부터는 매력(魅力)이 나온다. 사람은 매력을 담은 속주머니를 여러 개 몸에 지닐 필요가 있다. 부부간은 물론 친구 간에도 시간이 지나다보면 권태기가 오기 마련이다. 첫 번째 잘하는 것이 뛰어나 아무리 돈을 잘 벌고 직장에서 인정받는다 해도 인간적 권태 앞에서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그럴 경우 오른쪽 속주머니에서 매력 하나를 꺼내 보여주면 상대는 ‘어머머! 당신에게 그런 매력이?’하며 위기를 딛고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게 되는 거다. 시간이 경과해 또다시 그런 상황이 오면 이번에는 왼쪽 속주머니를 열어 다른 매력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자고로 인간의 향기는 매력에서 나오며 매력은 취미와 관심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은 제일 잘하는 것 한 가지만 발전시키는데 올인하고 있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매력 갖추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쏟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다 큰 어른이 되어서야 그 중요성을 깨닫고 매력 만들기에 나서지만 몸과 마음과 시간이 따라주질 않는다. 지금 우리는 끼니를 고민하던 생존의 시대, 내용을 따지던 생활의 시대를 거쳐, 분위기를 중시하는 문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관심을 끌고 즐길 거리가 도처에 산재(散在)해 있다. 사람이 화제가 빈궁(貧窮)하고, 매력이 없어 몸에서 향기가 안 난다면 그것은 가정, 학교, 사회, 국가가 아닌 순전히 자신의 노력 부족 때문인 것이다.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 음악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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