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최초의 왕국수도 말라카
500여년 식민통치 역사 간직하고도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선정

▲ 서태일 NCN 전문위원 전 말레이시아 알루미늄(주) 공장장

사람들에게 더위나 추위는 둘 다 견디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현명한 선인들이 방학을 만들고, 또 피서나 피한을 위한 휴가도 만들고, 생활을 위한 냉난방 장치들도 고안해 계속 발전시키면서 살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여름철은 가장 더운 시기이고 경험에 의하면 다른 건기의 기간보다 대기 온도가 1~2℃ 높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보다 습도가 낮아서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한 느낌이 든다. 낮 온도가 높지만, 한국처럼 무덥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게 특징이다.

지난 11일 말레이시아 알루미늄(주)을 퇴임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말레이시아를 떠나오기 전에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 페낭, 이포, 말라카를 다녀왔다. 말레이시아 최초의 왕국 수도였던 말라카는 말레이시아를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한번쯤 가보면 좋을 도시다. 양국의 국경이 개방되고 입출국 절차가 간소화되고 또 격리가 없어지면서 양국의 관광교류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말라카 중심부까지는 승용차로 약 2시간30분 걸린다. 영어로는 말라카(Malacca)라고 부르고, 현지어로는 믈라카(Melaka)라고 부른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톨게이트로 들어서면 잘 가꾸어진 주변의 경관들이 여행객을 반긴다. 아마 말레이시아의 관광지 중 제일 아름답게 가꾸어진 곳이라고 생각된다.

말레이반도는 동서양이 만나는 요지다. 말라카 해협을 중심으로 14세기경 시작된 왕국은 항구를 세우고 무역 시설을 구축해 아시아 상인들을 끌어들여 상업과 무역의 중심으로 번성해 갔다. 그 무렵 아랍 상인들에 의해 전해진 이슬람교가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오늘날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종교이자 국교가 되었다. 15세기 중반 중국의 무슬림 제독 쳉호(Cheng Ho)의 방문으로 중국(명나라)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16세기 유럽의 항해기술이 발전하면서 대제국의 건설을 꿈꾸던 유럽 국가들이 아시아로 눈을 돌리면서 1511년 4월 포르투갈이 300여명의 병력과 근대식 무기로 말라카를 점령했다.

그들은 무슬림을 학살하고 원주민을 동원해 요새와 왕궁 등을 지었다. 아시아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선교사 프란시스 자비에르(Francis Xavier)는 16세기 중반에 말라카를 방문해 포교를 시작했다. 포르투갈은 기독교(가톨릭)를 전도하려 했으나 주민의 대부분은 무슬림이었다. 전쟁에 패한 믈라카 술탄국의 왕실이 조호르(Johor)로 망명해 온전했으므로 주민들의 저항의식이 여전했고 지형과 기술 때문에 진압이 어려웠다. 포르투갈로서는 정복에는 성공했으나 가톨릭화에는 실패했으니 절반의 성공일 뿐이었지만, 의외로 믈라카 문화에 감동해 오히려 현지 문화를 존중했기 때문에 현재 말레이어가 존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 초부터 네덜란드는 여러 차례 공격 끝에 포르투갈을 물리치고 말라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총독 공관이었던 스타더이스를 비롯한 현재 네덜란드 광장 주변의 붉은 건물들이 이때 지어졌다. 포르투갈이 건설했던 에이 파모사 요새가 너무 견고해 대포로 파괴할 수가 없어 성문을 봉쇄해 아사(餓死) 작전을 사용해 포르투갈의 항복을 받아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824년 네덜란드가 영국에 무릎을 꿇으면서 말라카는 영국으로 양도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부터 잠시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나 1945년 종전과 함께 영국령으로 되돌아갔다가 1948년 말레이 연방의 일부가 됐다.

말레이시아는 1989년 4월15일 말라카를 역사도시로 선언했고, 2008년 7월7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됐다. 말라카의 국왕이 포르투갈과의 전쟁에 패해 조호르로 망명한 뒤 아직 영토를 되찾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 말라카주에는 술탄이 없다. 말레이시아는 약 500년 이상 외국의 식민지 통치하에 있다가 1957년 8월31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우리나라보다 더한 역사적 수난 속에서도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말라카를 둘러보면서 우리의 문화적 인식을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서태일 NCN 전문위원 전 말레이시아 알루미늄(주) 공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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