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겪지 않은 지금의 대학생들에
자본주의 맹아론·식민지 근대화론 등
구태한 경제적 이념 강의는 무의미

▲ 유동우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경제에 대한 강의를 오랜만에 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성장은 이념적으로 민감한 부분들이 많다. 이념은 정치적 지향성과 정치적 유불리와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성장과 분배라는 경제적 개념까지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 이념이 극렬하게 부딪히는 부분 중 하나는 일본 식민지기의 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이다. 자본주의 맹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대표되는 견해들은 서로 접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대립되어 있다. 따라서 매우 조심스럽게 강의해야 하는 분야다.

수업의 집중도를 높이고 관심을 끌기 위해, 우선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해 학생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점을 알려주고자 했다. 자본주의 맹아론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맹아론은 실질적으로 중국의 마오쩌뚱이 만들어낸 이론에 가깝다. 자본주의 맹아론을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사람들은 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자본주의 맹아론에 마음이 더 간다고 하더라도, 그 이론을 중국의 마오쩌뚱이 만들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되면, “어라, 그렇다면 어딘가 좀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내가 그랬고, 내게 관련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이 그랬다.

그런 생각이 들게 되면 강의를 좀 더 열심히 듣게 된다. 그렇게 강의의 집중도를 높여 강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전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학생들이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우선 확인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물었다. “자본주의 맹아론은 고등학교 수업 때 배웠죠?”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전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의 참여와 질문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 수업은 참여도 측면에서는 성공적이었다. 학생들은 곧잘 질문을 했고, ‘아는 형님’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처럼 교수와 학생 사이에 반말로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해도 학생들은 잘 참여했다. ‘아는 형님’처럼 반말로 교수에게 질문을 해 보라고 하자 나온 첫 질문은 “몇 살이야?”였다. 그리고 교수인 나에게 학생들은 정말 많은 질문을 반말로 했다. 무척 성공적이어서, 다른 강의에도 도입했고, 학생들은 반말로 질문을 잘 했고, 학생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그런 수업이었기에 학생들이 부끄러워서, 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귀찮아서 나온 반응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정말 잘 모른다고 또는 관심이 없다고 대답해 주었다. “자본주의 맹아론이나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거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안 배워요?”라고 다시 묻자, 한 학생이 대답했다. “그런 것이 있다 라는 것 정도는 배웠는데 자세히 배우지는 않았어요.” 내 생각과는 달랐다.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았다. “그럼 별로 관심도 없겠네요?” 학생들이 대답했다. “네.” 학생들의 표정도 그 대답이 진짜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강의 계획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강의 계획을 즉석에서 변경해야 했다. 관심이 없다는데 꼭 강의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강의의 결론으로 넘어갔다. 강의의 결론은 자본주의 맹아론이든 식민지 근대화론이든 과거의 일이고, 학문의 영역이고, 여러분들의 미래와는 큰 관계가 없을 확률이 높으니, 더 넓어진 세상에서, 이념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지향적으로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이념의 대립이 심각한 주제에 대해 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결론이다.

계획했던 강의의 본론을 이야기하지 않고, 결론만 강의하게 되니 시간이 남았다. 다른 내용으로 채워야 했다. 첫 수업에 해방직후의 가난과 고도성장, 그리고 불평등의 심화로 한국경제를 구분했고, 그 중 학생들의 관심도가 가장 높은 분야는 현재의 불평등의 심화 문제였다. 불평등에 대해 대략적으로 강의하고, 앞으로 그 부분과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해 더 많이 강의하겠다고 하자 학생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학생들은 분명 더 높은 집중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수업을 끝냈다.

수업이 끝나고 깨달았다. 낡은 이념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나였다. 2000년 이후에 태어나기도 한 지금의 대학생들은 아니었다.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이 끝난 시기에 태어나 가난을 겪지 않고 자란 세대인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안정적인 직장을 얻는 것이 힘들고, 불평등이 점점 거대해지는 시기를 살고 있는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자본주의 맹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걸로 아직도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낡은 이념의 시대를 살고 있는 나를 비롯한 나이든 어른들과 정치인들 뿐이었다.

이념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최대한 비이념적으로 안전하게 다루기 위해 냈던 학생들을 위한 내 강의의 결론은 시대가 변하자 의도치 않게 정답이 되어 있었다. ‘Educated people live in a bigger world. 교육받은 사람들은 더 넓은 세상에서 산다.’ 미국에서 보험회사 직원이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직장을 얻어 이사를 한 나는 자동차 보험은 오하이오주에, 화재보험은 웨스트버지니아주에 들어야 했다. 같은 보험회사에 두 개의 보험을 들면 할인을 해 준다. 그런데, 주가 달라서 할인을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보험회사 직원은 자기가 ‘Educated people live in a bigger world’라는 말까지 하며 회사를 설득해 보았지만 안 되었다고 했다. 할인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말은 내 모든 수업의 결론이 되었다.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그 말을 소개하며 이야기 했다. 더 넓은 세상은 물리적으로만 더 넓은 세상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나처럼 영어를 배워서 한국과 미국이라는 더 넓은 세상을 살 수도 있겠지만, 주식투자를 시작해서 financial world, 금융이라는 세상으로 여러분의 세상을 넓혀도 된다고 이야기 했다. 금융의 세상에선 국경에, 인종에, 성별에, 나이에 별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하며, 주식투자를 통해 한 번 첫 발을 내딛어 보라고 했다. 금융의 세계에 살게 되면 주식을 사는 현재와 주식을 파는 미래를 동시에 살게 될 것이라고도 이야기해 주었다. 게임과 소셜 네트워킹과 같은 cyber world, 가상의 세계를 살아도 되고, 어쨌든 더 넓은 세계에서 미래지향적으로 살라고 말해주었다.

낡은 이념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나에겐 이념의 대립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며 ‘Educated people live in a bigger world’라는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번 학기의 학생들이 알려주었다. 학생들은 더 이상 낡은 이념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세상이 바뀌었다. 현재를 사는 세대에게 친일파는 없다. 이제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빨갱이도 없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정치체계는 처참하다. 나도 낡은 이념을 넘어설 때가 되었나 보다. 학생들이 가르쳐줬다.

유동우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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