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라 ‘방에서 벌레가 나왔다’, 132×162㎝, 3장, marker on canvas, 2021.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상주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작고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지는 세면대로 눈길을 돌렸다. 물감접시를 씻는 노란 그물 수세미에서 지네 한 마리가 긴 몸통과 함께 많은 다리들을 앞뒤 차례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리가 많은 벌레는 보통 다른 벌레보다 몇 배로 징그럽고 혐오스럽게 느껴진다. 반복되는 다리와 그 움직임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영화에서도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괴물들은 항상 다리가 많다. 징그러우면서도 지네의 색은 감탄할 정도였다. 등껍질이라 해야 할까. 보기에 딱딱하고 동그란 등껍질이 여러 개가 연결되어 있는데 그것의 색은 아주 영롱하고 짙은 청록빛을 띠고 있었고, 다리는 그것의 보색인 너무나 맑고 투명한 주황빛을 하고 있었다. 닭살이 돋았지만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내 회화 속의 물감색 보다 훨씬 아름다운 색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네가 좋아질 리는 만무하지만 다시 한 번 그런 빛을 지닌 지네를 만나보고 싶다.

화가에게 회화의 대상이 되는 것은 좋아하거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만은 아니다. 싫어하거나 무섭거나 짜증나거나 하는 것도 모두 회화의 대상이 된다. 왜 싫은지 파고들기도 하고, 자꾸 보고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친숙한 것이 되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그러하 듯 김보라 작가 역시 방에서 벌레와 마주치고 싶지는 않다. 벌레의 징그러운 이미지에도 그 이유가 있지만, 학습된 결과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정보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실상에는 존재하지 않을만한 괴물이나 미생물 또는 유기적인 어떤 것은 좋아한다.

방에서 나오는 벌레보다 그 이미지가 더 징그럽기도 위협적이게 보이지만 그리고 싶은 대상이 된다. 심지어 그것들을 전시장에 더 가득 메우지 못한 것이 자꾸 아쉽다. 화면 밖으로 쏟아져 나와 천장에도 바닥에도 가득 흘러내렸으면 좋겠다고 한다.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징그럽고 무서워 보이는 게 가득 있어도 좋은 것이다.

▲ 기라영 화가·미술학 박사
▲ 기라영 화가·미술학 박사

실제로 이렇게 징그럽게 생긴 많은 것들이 방안에 한가득 꾸물거리고 있다면 기절할 노릇이다. 어느 날 방안에 출몰한 한 마리의 벌레가 그렇게 잠을 설치게 했는데, 이제는 자신이 그려낸 갖가지 상상의 벌레들이 가득한 이 화면 안의 세계가 작가에게 가장 편안하고 안도감을 주는 곳이 되었다.

김보라의 ‘방에서 벌레가 나왔다’전은 오는 19일까지 감성갱도2020(북구 제내3길 6-9) A동 갤러리에서 진행된다.

기라영 화가·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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