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천태산 영국사를 대표하는 것은 천연기념물인 은행나무다. 영국사에는 많은 보물이 있지만 은행나무만큼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천년을 훌쩍 넘어 살고 있는 은행나무는 높이 31m, 둘레가 약 11m로 서쪽 가지 하나가 땅에 뿌리를 내려 독자적으로 자라고 있다. 나무도 천년이란 오랜 세월을 살면 신령이 깃들기 마련이다. 나라에 큰 어려움이 있을 때는 소리를 내어 운다. 그래서 해마다 은행나무님께 당산제를 올린다.

천태동천의 등산로를 따라 영국사 일주문을 들어선다. 그런데 거대한 은행나무는 잎을 다 떨군 채 맨몸이다. 사방으로 뻗어 휘날리던 금빛 영락들이 모두 땅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천년의 무게를 털어낸 듯 홀가분해 보인다. 잎을 매달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까만 속살이 위엄 있고 엄숙하다. 나무의 우주적 순환이다.

영국사에는 은행나무처럼 천년 이상 천태산을 지켜온 삼층석탑이 있다. 만세루 계단을 오르자 석탑이 기다렸다는 듯 쑥 들어와 안긴다. 일층 몸돌에 문비가 뚜렷하고 큼직한 자물쇠와 함께 문고리가 돋을새김 되어 있다.

위층 기단 네 면에 새긴 안상문도 아름답다. 안상문이 면 전체를 아우를 만큼 저렇게 크고 넓었다니, 허리를 둥글게 구부려 보물인 삼층석탑을 들여다본다. 머리 장식인 상륜부는 앙화, 보룬, 보개, 수연이 남아 있다. 수연은 법륜이 돌면서 생기는 불꽃모양으로 불법이 사바세계에 두루 미친다는 의미다. 꾸미지 않은 소박한 절집과 아담한 석탑이 조화를 이룬다.

석탑을 지키고 있는 보리수도 잎을 떨군 채 묵언수행중이다. 보리수에 살짝 기대어 대웅전 마당을 본다. 너른 공간에 선이 죽죽 그려져 있다. 여백을 메운 정갈한 비질 자국은 눈으로 보는 경전이다. 나뭇잎 털어내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준 은행나무 덕분이다.

언젠가 당산제에 꼭 한 번 참석해야겠다. 스님들이 추는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 같은 산중작법을 보고 싶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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