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①
신령스러움 찾기 힘든 돌투성이 언덕
3대 종교의 성지, 분쟁의 역사로 점철
시간의 흔적 위에 오늘의 삶이 뒤섞여
역사와 장소의 관계를 곱씹어보게 해

▲ 예루살렘성은 맞은 편 올리브동산에 올라서야 그 전모를 볼 수 있다. 돌산 경사면에 자리잡은 도시와 성벽, 그리고 아침햇살에 빛나는 황금 돔이 장쾌한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루살렘은 성지다. 문제는 서로 다른 종교를 바탕으로 하는 여러 민족의 성지라는 점이다. 그 거룩한 땅을 지키기 위해, 또는 되찾기 위해 벌어진 갈등과 투쟁의 역사가 수천 년을 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히브리어로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예루샬라임(Yerushalyim)과도 거리가 멀다. 도대체 이 땅에 어떤 ‘거룩함’이 있기에 그토록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것일까.

예루살렘성은 그 맞은 편 올리브동산에 올라서야 그 전모를 볼 수 있다. 돌산 경사면에 자리 잡은 도시와 성벽, 그리고 아침햇살에 빛나는 황금 돔이 장쾌한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그러나 인류 3대 종교의 성지라고 할 만큼 경이롭거나 신비스러움은 느낄 수 없다. 성지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지형적, 지리적 영기가 보이지 않는다. 신묘한 분위기의 산형도 아니고, 도도한 강물로 감싼 것도 아니며,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는 항구도 아니다. 신령스러움이란 찾아보기 어려운 돌투성이의 작은 언덕이 어떻게 인류 3대 종교의 성지가 될 수 있었고, 그것을 빼앗거나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왔던가.

원경으로 바라보는 예루살렘은 서구나 중동의 역사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관적 정체성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근대나 현대도시도 아니다. 도무지 하나의 코드로 읽어내기 어렵다. 그만큼 복합적이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다. 황금 돔 지붕을 갖는 바위 사원만이 예루살렘임을 알려주는 랜드마크가 된다. 그곳은 마치 격렬한 부부싸움 끝에 살림살이들이 나뒹구는 집안 꼴과 유사하다. 누구 하나 정리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는 그런 도시다.

기독교인들의 순례는 예루살렘성이 아닌 올리브산에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행적과 관련된 장소가 산재하기 때문이다.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었다는 장소, 수난하기 전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는 장소, 체포되었던 장소, 그리고 승천했다는 장소에 이르기까지 성서에 기록된 여러 사건들의 현장이 남아있다. 그 장소마다 기념 교회나 예배소를 세워 성소로서 보존하고 있으나, 신앙보다는 순례 관광을 위한 장치에 가깝다.

계곡을 건너 ‘사자의 문(Lion’s Gate)’을 통해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선다. 골목길에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길이 시작된다. 이른바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본시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았던 곳으로부터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다. 역사적 장소라기보다는 순례자들의 신앙심을 위해 14세기 수도사들이 설정한 길이다. 이 길은 재판정으로부터 무덤에 이르는 14개의 장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부는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 18세기에 확정된 것이다. 불과 800m에 불과한 이 길은 제 1처 빌라도의 재판정으로부터 시작된다. 길은 주택가를 지나 좁은 시장 골목을 통과하면서 14처에 이르는 여러 수난의 장소가 느닷없이 나타나곤 한다. 현판을 보지 못하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현지인들의 고단한 일상 속에 2000년 전의 역사적 사건이 재현되곤 한다.

그 길의 정점은 성묘교회에서 끝난다. 예수의 옷을 벗긴 제10처로부터 예수가 묻힌 제 14처가 모두 이 교회 안에 있는 것이다. 십자가형을 받은 곳을 2층에 두고 1층에 무덤이 있는 교회의 모습은 시장거리 안 상가건물 몇 층에 있는 교회보다 더 당황스럽다. 예수 수난의 의미를 묵상하기에는 너무도 상업적이고, 번잡스럽고, 요란하다. 무릎으로 기어 무덤 안으로 들어가 입을 맞추는 열혈 신자들과 이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관광객들이 두루 섞여 도떼기시장을 이룬다. 성소가 아니라 관광 상품이다.

역사적 장소로서 예루살렘을 보기 위해 다시 자파게이트(Jaffa Gate)를 통해 성안으로 들어선다. 미로와 같은 성안의 골목길은 방향감각을 잃게 만든다. 중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규칙한 좁은 골목길이 수없이 가지를 친다. 성 안에는 다양한 풍경이 혼재되어 있다. 그것은 인종과 종교, 시대의 다양성에 기인한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 위에 오늘날의 삶이 뒤섞인다. 그것은 지나간 시대의 흔적이 아니라 오늘날 삶의 양식과 사회적 관계를 결정짓는 배경이 된다. 유대인 지구, 아랍인 지구, 아르메니아인 지구 등으로 구획되어 있으나 물적 경계는 없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팽팽한 긴장과 경계심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골목을 헤치며 통곡의 벽을 향해 나아간다. 산 아래로 황금 돔 사원(바위사원)을 받쳐주는 성벽이 보인다. 성전 산을 둘러싸는 성벽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곳에서 아들 이삭을 신에게 바치려 했다’고 믿어 왔고, 모세가 전해준 성궤를 모시기 위해 성전을 이곳에 세웠다. 성전과 성벽은 외적의 침입으로 파괴와 재건을 반복했고, 최후에는 기원전 1세기 헤롯 왕(B.C.37-B.C.4)이 재건한 것을 로마군이 완전히 파괴했다고 한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그렇다고 현재의 성벽을 유대인이 건설한 성전의 성벽으로 보기도 어렵다. 7세기 예루살렘은 무슬림에 의해 지배되었고, 무슬림들은 이곳을 예언자 무함마드가 승천한 장소라고 믿었다. 그들은 바위 위에 이슬람 사원을 세웠고, 이것이 오늘날의 황금 돔 사원(바위사원)이다. 오늘날의 성벽도 그 당시에 축조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서쪽 벽을 ‘통곡의 벽’이라 부르며 점유했다. 그 옛날 로마군에 의해 성전이 허물어질 때 유대인들이 이곳에서 통곡을 했다는 유래가 이 장소를 점유하고 성소로 만든 배경이다.

성전 산이 어둠에 물들 무렵, 광장을 내려다보는 전망대에 올라간다. 골목이라 찾기도 어렵고 입장료도 물어야 하지만 통곡의 벽과 황금 돔 사원을 내려다보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 특히 황혼에 물든 예루살렘 구시가와 통곡의 벽은 묘한 감상에 젖게 한다. 노란 불빛이 하나 둘씩 성벽을 비추는 이곳에서 역사와 장소의 관계를 곱씹어 본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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