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②

콘크리트 ‘분리 장벽’과 초소 넘어
팔레스타인 땅에 위치한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 신앙의 기원같은 성지
수녀원 등 부속시설 복합단지로 발전
교회 바로 옆엔 카타리나 성당 자리
같은 조상을 두고 서로 정통성 주장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예루살렘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향한다. 당연히 예수 탄생지를 돌아보기 위함이다.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땅이다. 그 땅에 들어가려면 콘크리트 분리 장벽을 넘어 삼엄한 경비초소를 거쳐야 한다. 외국도 아니지만 함부로 넘나들 수 없는 경계다. 잔뜩 긴장했지만 의외로 통과 절차는 까다롭지 않다. 관광객들에게는 너그러운 편인가 보다.

높이가 5m에 이르는 콘크리트 장벽은 전기 철조망까지 갖추어 마치 교도소의 담장처럼 두 세계를 갈라놓았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이 장벽을 ‘보안장벽’이라 부른다.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장벽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테러 공격으로부터 유대인 정착촌을 보호하기 위해 세웠다고 설명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했다는 사실은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를 ‘분리 장벽’이라 부른다. 2000년대의 어느 날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갑자기 장벽이 생기고 지역이 분리되면서, 오갈 때마다 엄중한 보안검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장벽이 유대인 정착지의 확장이며, 팔레스타인 영토의 축소라고 인식했다. 국제사법재판소에서도 이 장벽은 팔레스타인인의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써 철거해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이스라엘은 아직도 철거를 거부하고 있다.

삼엄하고 위압적인 콘크리트 장벽에 누군가 낙서와 같은 그래피티를 그려 넣기 시작했다. 경계와 고립, 증오의 상징인 장벽에 자유와 평화, 공존과 화합의 메시지를 담았다. 그 메시지는 전염병처럼 공감의 반향을 일으켰다. 콘크리트 장벽 하나하나가 커다란 화폭이 되었다. 꽃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청년, 군인을 검문하는 소녀, 철조망으로 줄넘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 드론 폭격기가 이끄는 산타 썰매. 그것은 그저 낙서가 아니다. 풍자와 해학, 재치가 넘치는 강한 페이소스,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들이 장벽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 베들레햄 예수탄생교회. 예수가 탄생한 마굿간으로 비정된 동굴을 예루살렘과 마찬가지로 성소로 인정하면서 4세기경 그 위에 예수탄생교회를 세웠다.
▲ 베들레햄 예수탄생교회. 예수가 탄생한 마굿간으로 비정된 동굴을 예루살렘과 마찬가지로 성소로 인정하면서 4세기경 그 위에 예수탄생교회를 세웠다.

이 그래피티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뱅크시(Banksy)라는 영국인 미술가로 알려진다. 하지만 그 이름도 가명일 만큼 신비로운 존재다, 그의 작품은 낙서처럼 가볍지만, 그 메시지는 어떤 웅변보다도 강렬하다. 그의 작품에서 증오는 사랑으로 변하고, 전쟁은 장난의 유희이며, 차별은 공존과 화합이 된다. 그가 2017년에 열었다는 월드오프 호텔에 그의 대표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호텔은 ‘벽으로 가로막힌(walled off)’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건물도 장벽만큼이나 우중충하고 으스스하다. 현관에서는 손님을 맞는 산타 복장의 원숭이가 생경스러움을 더한다. 하지만 외관과 달리 그 내부는 여느 호텔처럼 포근한 모습이다.

호텔 안에는 분리 장벽이 생기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전시실도 두었다. 전시물들도 그래피티 만큼이나 날카로운 풍자가 가득하다. 특히 팔레스타인 땅의 일부를 유대인들에게 제공한다는 문서에 서명을 휘갈기는 영국인 인형의 모습이 분노를 자아낸다. 느닷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 수화기에서는 ‘10분 뒤에 당신 집을 공습할테니 빨리 집을 비우라’는 이스라엘 군인의 목소리에 소름이 돋는다. 호텔을 나오는데 무지개가 장벽을 넘는다. 장벽과 무지개가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

베들레햄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0㎞ 거리에 소재한다. 예수가 탄생한 곳이니 기독교 사회에서는 신앙의 기원과 같은 성지이다. 베들레헴의 한 동굴은 예수가 탄생한 마굿간으로 비정되었다. 기독교 공인 이후 예루살렘과 마찬가지로 성소로 인정되었고, 4세기경 그 장소 위에 예수 탄생교회를 세웠다. 물론 현재의 교회 모습은 6세기 중반 이후에 형성된 것이다. 교회의 정면은 거친 돌을 쌓아 만들어 마치 성벽처럼 보인다. 그럴듯한 장식도 표식도 없는 거친 돌벽의 교회 정면이 오히려 순수하고 고졸스럽다. 허리를 굽혀야만 출입할 수 있는 작은 문 하나가 건물 정면임을 나타낸다. 이름하여 ‘겸손의 문’이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연상시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나니’(마태오 7-13).

그러나 내부로 들어서면 갑자기 웅장한 공간이 전개되면서 바깥 모습과 극적 대비를 이룬다. 내부는 비잔틴 시대의 분위기가 물씬하다. 코린트식 열주가 늘어선 바실리카식 평면 위에 목구조가 노출된 천장이 설치됐다. 상부 벽체에는 12사도를 그린 금빛 모자이크화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어 비잔틴 시대의 역사를 증언한다. 그 제단 밑에 예수 탄생지로 알려진 말구유가 표시되어 있다. 말구유를 참배하기 위해 지하로 들어가려는 인파가 언제나 장사진을 이룬다. 물론 마굿간이나 말구유가 재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휘황찬란한 금박 장식과 화려한 성화, 그리고 등잔들로 장식되어 마굿간의 이미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중세 초기 이후 이곳은 기독교 세계의 가장 중요한 순례지 중 하나가 되었다. 심지어 이슬람교도들도 그 거룩함을 인정해 성소를 훼손하지 않았다. 예수 탄생교회를 중심으로 수녀원 등 부속시설이 첨가되면서 복합단지로 발전해 갔다. 19세기에는 가톨릭 프란치스코 회에서 교회 바로 옆에 카타리나 성당을 지었다. 예수탄생교회의 관리주체가 아르메니아 정교회이므로 정교회 미사만 허용됐기 때문이다. 같은 조상을 두고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격이다.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구유 자리에 꿇어 엎드려 입을 맞춘다. 그 열정적 신앙을 탓할 이유는 없지만, 그 기원 속에 어떤 사회적 의미가 담겨있는지 모르겠다. 오늘날 베들레헴이 처한 상황은 예수 탄생의 환희와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충만감보다는 허무하고 허전한 마음이 밀려온다. 밤새 폭풍우가 호텔 창문을 두드린다. 비명인지 울부짖음인지 가슴을 저민다. 또 얼마나 많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할까?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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