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장터에는 활기가 넘친다. 섬진강변으로 봄꽃 나들이를 왔지만 먹을거리 풍성한 시골장터 구경도 빼 놓을 수 없다. 관광버스가 연이어 들어온다. 지리산에서 시작된 화개천이 섬진강과 합류하는 지점인 화개장터는 화개면 탑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니까 탑이 주인인 동네다.

봄이 되면 광양 매화와 지리산 산수유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쌍계사로 이어지는 십리 벚꽃 길도 마찬가지다. 그들 대부분이 화개장터에 들르지만 정작 주인에게 인사는 없다. 삼층석탑 혼자 저쪽 언덕에서 고개를 빼고 타지에서 온 사람들을 궁금해 할 뿐이다. 탑은 숨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노반만 남은 상륜부가 살짝 보여 급히 그쪽으로 발을 옮긴다.

마을에 흩어져 있던 부재를 모아 복원한 탑이다. 그런데 한 평이나 겨우 될까 말까 한 좁은 곳에 가두어 버렸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어 탑돌이도 할 수 없다. 빠끔하게 열린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민망하다. 옛 우체국 건물은 얼마 전까지 조영남 갤러리 카페였다. 카페를 찾았다가 우두커니 갇혀 있는 탑을 보고 화들짝 놀라 잠깐 친구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지금은 갤러리 운영을 멈춘 탓에 주위가 적막하다. 창문 너머로 화투그림을 본다. 기발한 원색의 그림들도 탑처럼 서서히 잊히고 있는 중이다.

이곳은 원래 봉상사란 절이 있었다. 절집은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삼층석탑은 스스로 빛나던 시간을 품고 있기에 위엄이 서려 있다. 군더더기가 없어 상승감도 느껴진다. 그렇게 시원하게 뻗은 자세로 소설 역마의 옥화 주막이며 옛날 팥죽 집 돌계단을 지긋이 바라본다. 섬진강에서만 나는, 제철 음식인 벚굴을 먹으러 온 미식가들의 들뜬 시간도 화강암에 새겨 넣는다.

화개는 전통을 자랑하는 차의 고향이다.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석탑은 하동 녹차와 역사를 같이 한 귀중한 문화재다. 부처님의 감로법문을 생각하며 삼층석탑 앞에 맑은 차 한 잔 올린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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