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불을 품은 청년, 안중근

▲ 설성제 수필가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안중근 하면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의 편지가 함께 떠오른다. ‘옥중에서 죽으라. 그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어느 부모인들 자식보다 나라를 더 크게 여겨 자식을 내어줄 수 있을까. 그러나 자식과 나라를 따로 떼 내어 생각할 수가 없는 법. 지금도 살아계신, 난세를 살아냈던 어른들의 입에서 자꾸만 격세지감이 나오는 것이 유감이다.

나라의 주권이 넘어간 1905년 을사늑약 때로 거슬러 오르면 우리 백성들은 이미 일제강점 하 피폐한 삶을 견디지 못해 만주 땅으로 러시아로 떠나간다. 안중근 의사는 그 무렵부터 독립운동을 해오다 한일병합조약이 이루어진 그해 1910년 3월에 중국 대련 뤼순감옥에서 사형된다. 이 책은 이런 일련의 사건 속에 이름도 없고 빛도 없이 그러나 형형하게 살아있던 한 청년 안중근과 그의 친구 우덕순의 이야기이다.

김훈의 <하얼빈>(문학동네)에서도 김훈의 여느 작품들처럼 역시 간결한 문장에 빠져든다. 비단실 자아내는 듯한 특유의 대구법 문장들은 김훈 작가의 큰 자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극히 짧은 대화글 속에는 나라를 사랑하는 물과 불을 품은 청년들의 짧고 단호한 심중이 절절히 배어있다. 애국은 결코 요란하지 않으면서 강렬한 계획과 실천으로 이루어감을 문장이 문장을 한없이 끌어오고 있다.

설성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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