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문제, 정쟁거리로만 삼지 말고
정치·언론·학계·학부모 등과 합심해
교육 백년대계 수립의 출발점 삼아야

▲ 신면주 변호사

수능을 앞두고 ‘킬러문항’ 출제금지 논란이 뜨겁다, 야담이지만 조선 과거시험의 최고난도 ‘킬러문항’은 ‘상가승무노인곡(喪歌僧舞老人哭)을 논하라’이다. 영조대왕이 민정시찰 중에 상복을 입은 남자는 노래를 부르고, 여승이 춤을 추며, 그 옆의 노인은 울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연유를 물으니 아버지 상중에 노모의 환갑이 다가와서 아내가 머리를 잘라 판 돈으로 환갑잔치를 하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영조대왕은 이들의 효심에 감동해 다음 과거시험에 꼭 응시하라고 당부한다. 아들이 과거장에 가니 시제가 ‘상가승무노인곡’이라 아들은 쉽게 장원 급제한다. 반면 다른 응시자들은 영문도 모른채 킬되고 말았다. 선의의 담합에 의한 불공정한 시험이었던 셈이다. 사농공상의 신분제가 확고한 유교 질서 아래서, 가난하고 줄이 없는 서민의 신분 상승에 대한 뿌리 깊은 열망을 담은 민담으로 짐작된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로 합리화되는 지나친 교육열은 국가발전에 기여한 측면도 크지만, 사교육의 비대로 인한 폐해가 늘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공교육이 확립된 1960년대부터 상류층의 쏟아붓기식 과외가 중산층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과외를 부추기고, 이제는 서민층까지 따라나서기식으로 확산돼 모두가 과외 문제로 고통받는 상황이 연속되자, 1969년 중학교 무시험제, 1974년 고교평준화, 1980년 본고사 폐지 등의 과외 열풍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으나 효과적인 대책이 되지는 못했다.

1980년 신군부는 전면 과외 금지 조치를 실시하게 된다. 당시 오자복 문교공보분과위원장의 말을 들어보자 “과열 과외 현상은 더 이상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교육적 병폐요. 교육의 부조리로 확대·심화되고 있다. 중학교 학생의 학부모까지 과외공부를 하지 않고는 대학 입시에 합격할 수 없다는 생각과 우려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학부모는 빈약한 가계의 규모를 줄여서라도 자녀의 장래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심리적 부담과 고통 속에서 살고 학생들은 입시와 합격이라는 무거운 마음의 부담에 짓눌려 발랄하게 꽃피워야 할 젊음과 지성이 내일을 위한 창조의 싹이 채 움트기도 전에 시들어 찌들고 있는 안타까운 처지에 몰려 있다. 학교 교사는 과외 교사에 학교는 학원과 비교되어 고등학교 교육은 한마디로 존재하지 않는 고교교육 부재라는 엄청난 국력의 낭비가 벌어지고 있다. 고등학교 교육은 이류 삼류 학원보다 못하다는 이러한 상황은 우리 사회의 암적 요소라 할 것이다.”

약 40여 년 전의 진단이지만 오늘의 상황을 생중계하는 것처럼 생생하다. 이러한 신군부의 강압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고액의 비밀과외가 성행하는 등 완전히 과외를 막지는 못했다. 비밀과외와의 전쟁을 벌이던 중, 헌법재판소는 2000년 4월27일 과외금지가 ‘국민의 학습권 침해’라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했다.

사교육과의 전쟁을 벌여오던 정부는 당혹했고, 사교육 시장은 메카 대치동에 거대 자본의 학원이 등장하는 등 요동치기 시작했다. 문민정부들의 수많은 대책과 진단에도 불구하고 백약이 무효인 상태가 되었고, 이제는 거대한 괴물이 된 사교육에 모두 백기 투항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급기야는 사교육 시장과 교육 당국이 담합한다는 의심을 받기에 이르렀다.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은 출산 기피, 사회적 위화감, 사교육비 부담에 따른 계층의 재생산 등 사회구조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나는 하기 싫다. 그러나 남들이 죄다 하므로 안 할 수가 없다. 즉 운동장에서 한 관객이 자기만 경기를 잘 보려고 일어서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일어서게 된다. 결국 모두 앉아서 보는 것과 효과는 똑같은데 서 있는 피로감만 점차 더 커지는 ‘구성의 오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교육 문제는 대학 서열화, 학력· 학벌사회,

국민의식, 노동시장의 개편, 교육이념의 극단적 대립 등과 깊숙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한 일개 교육정책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이 거대한 괴물에 현 정부가 단기로 돌진하는 모습이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사교육 카르텔의 문제를 정쟁의 대상으로만 삼을 것이 아니라 정치권, 언론, 전문가, 학부모, 교사, 시민단체 등이 모두 나서서 필요하면 헌법에 규정을 두어서라도 교육백년대계 수립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신면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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