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대응위해 지방정부 연합 필요
거대 메가시티는 울산의 도약기회
제도적 협력장치 폐기 재검토해야

▲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국가도 마찬가지이지만, 도시의 발전은 개방성에 있다. 인류 역사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도시들은 성장하였으나 폐쇄적으로 눌러 앉은 도시들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제국의 수도 로마에는 성벽이 없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기에는 굳이 성벽을 쌓을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안전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로마의 성장과 발전에는 이러한 개방성이 한 몫을 하였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은 2000년 전의 로마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개방과 소통의 시대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알 수 있고, 어느 한 지역의 이슈가 일거에 전 세계적인 문제로 비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연계사회’에서 이웃과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지는 못할망정 주어진 제도조차 걷어차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못한 접근이다. 제대로 시행도 못해 보고 사라져 버린 ‘부울경 특별연합’(메가시티) 얘기다.

민선 8기 시장이 특별연합을 폐기하면서 든 명분은 ‘울산에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충분한 토론도 없었고 뚜렷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실체도 불분명한 ‘부울경 경제동맹’을 내세우고 그동안 존재감도 미미했던 ‘해오름 동맹’을 다시 들고 나왔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 울산은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 지방자치법에 근거한 ‘부울경 특별연합’은 중앙정부의 지원이 보장된 법적·제도적 장치였지만 이른바 경제동맹은 실체가 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사무국의 규모나 역할도 특별연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축소되었으니 성과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전문가들도 우리나라 지방자치 역사상 의미 있는 제도의 하나로 평가하였던 부울경 특별연합이 좌초된 것은, 전(前)정부가 추진한 것이라는 정치적인 이유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매년 지방 정부들은 국비 확보를 비롯해 중앙정부의 다양한 지원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자원 배분은 결국 정치적 파워게임이다. 중앙에서 보기에 울산은 지방의 한 도시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부울경’을 하나로 합하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된다. 울산과 부산·경남이 연합해 각 지역에서 필요한 사업을 공통적으로 발굴하고 부울경의 이름으로 요구하면 중앙은 이를 무시하기 어렵다. 자원과 권력이 집중된 중앙에 대응해 지역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도 지방정부 간의 연합과 결속은 반드시 필요하다. 예컨대 중앙의 대대적인 지원 하에 부산이 사활을 걸고 있는 ‘2030 엑스포’도 부울경 메가시티 차원에서 추진되었다면 울산도 일정 부분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울산의 상황을 감안할 때 다양한 채널을 통해 도시의 외연을 확대하고 협력의 범위를 넓히는 것은 도시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부울경의 800만 인구는 수도권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부울경 지역이 촘촘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하나의 거대 메가시티로 기능할 수 있다면 울산의 도약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이른바 ‘탈울산’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이는 패배주의적 사고에 불과하다. 울산이 이 정도의 리스크도 극복할 역량이 없다면 미래의 희망도 없는 것이다. 우리보다 규모가 작은 포항이나 경주와 교류하면서 ‘골목대장’을 하기보다는 좀 더 큰물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금년 초에 부울경 특별연합이 완전히 폐기된 이후에도 부산·경남과는 여러 분야에서 협력이 모색되고 있다. 간헐적으로 문화예술 교류 세미나도 열고 경제적 협력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이웃 지역이라 이런 교류와 협력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작 항구적이고 체계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는 폐기해 버리고, 별다른 성과를 거두기 힘든 일시적 교류만 간헐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현실이 기이할 뿐이다.

로마는 성벽 대신 길을 만들어 확대 지향의 제국 형성 기틀을 다졌다. 1년 전 우리는 스스로 성벽을 쌓고 문을 닫아걸었다. 그래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지방자치법에는 여전히 특별지방자치단체 설립과 지원규정이 존재한다. 지금이라도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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