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왕국시대에 주로 건설된 룩소르 유적
사회적 혼란·도굴위험에 피라미드 대신
신왕국 파라오들은 계곡동굴에 묘 조성
왕가의 공동묘지 지구인 ‘왕가의 계곡’
제례의식 치르는 신성 건축물 ‘장제전’
피라미드 대신할만큼 위엄·신성함 갖춰
거대한 기암절벽이 주는 웅대한 스케일
수직·수평 대비, 좌우 대칭 정적 고요함
현대 디자인 개념으로도 소름돋는 장관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카이로를 떠나 룩소르(Luxor)로 향한다. 기차는 나일강을 따라 밤새 남쪽으로 달린다. 아침 햇살에 밝아오는 차창 밖으로 나일강이 따라온다. 사막을 달리던 풍경은 강을 만나며 싱그런 녹색의 수채화로 바뀐다. 강변에는 사탕수수, 밀, 과일, 채소, 야자수 등 짙은 녹색의 생명력이 사막과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강 양편에 펼쳐진 농지 폭이 1~2㎞ 정도에 불과하지만, 나일 강의 길이를 생각하면 광대한 오아시스다. 고대 이집트 문명을 잉태하고 양육한 문전옥답임에 틀림이 없다.

밤새 660㎞를 달려 온 기차는 아침 무렵 룩소르에 닿는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 고대 이집트의 수도로 발전했던 고대도시 테베(Thebes), 그 신비로운 유적이 남아있는 도시다. 분열과 전쟁으로 시달렸던 이집트 고왕국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재통일을 이루며 중왕국 시대를 시작했다. 이들은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의 중간지대였던 테베로 수도를 옮기고 이집트 고대문명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중왕국 시기 테베는 비교적 짧은 번영기를 마치고, 기원전 1500년경부터 신왕국에게 도시 발전의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룩소르 유적의 대부분은 신왕국 시대에 건설된 것이다.

그들은 멤피스에서 했던 것처럼 나일강의 동쪽에 궁전과 신전을 포함하는 도시를 건설했고, 서쪽에는 저승 세계인 네크로폴리스를 조성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볼 수가 없다. 기원전 1500년대 이래 파라오들은 더 이상 자신의 무덤으로 피라미드를 짓지 않았다. 기근과 사회적 혼란으로 피라미드를 축조할 경제적 여력도 없었거니와, 도굴을 피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 ‘왕가의 계곡’에 위치한 핫 셉수트 장제전
▲ ‘왕가의 계곡’에 위치한 핫 셉수트 장제전

신왕국의 파라오들은 도굴꾼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와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깊은 계곡 속에 동굴을 파고 그 안에 묘실을 만든 후 입구를 은폐하는 방법이었다. 이른바 횡혈식 석실분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아무 장소에나 묘혈을 조성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신성한 산으로 둘러싸인 은밀한 계곡를 찾았다. 나일강의 범람을 피할 수 있는 지형이며, 착굴이 쉬운 사암지대를 선택해 동굴 묘를 조성했다. 이른바 ‘왕가의 계곡’은 왕가의 묘지군이 조성된 공동묘지 지구였던 셈이다.

은폐돼있는 입구를 들어서면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천천히 내려간다. 경사로의 천정과 벽에 채색된 그림이 마치 르네상스 시대 갤러리처럼 화려하다. 그들은 거대한 피라미드로 스케일의 외경스러움을 표현하는 대신, 장려한 함하 궁전을 축조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거기에는 저승 세계로 가는 화려한 길과 영생의 공간을 담았다. 벽과 천정에는 사자가 이룩한 생전의 업적이나 사후세계를 기원하는 내용이 표현됐다.

긴 참도의 끝은 묘실부의 중앙홀에 닿는다. 홀 주변에 부속실(사적인 생활용품 수장), 전실(종교 의식 등에 사용되는 도구 수장), 현실(관을 안치한 방)을 배치했다. 상형문자와 회화로 장식된 내부공간의 모습이 신비스럽지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장식에 불과하다. 관광객이 북적이는 묘실도 결코 엄숙함이나 경건함을 느낄 분위기가 아니다. 이곳에 묻힌 파라오들도 3000년 후 자기 시신이 야만인들의 사진 배경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피라미드의 소멸과 함께 장제전의 존재 양상도 달라졌다. 장제전이란 파라오의 영혼에 대한 제례 의식을 치루는 장소다. 피라미드 앞에 젯상처럼 배치됐던 장제전도 독립적인 시설로 건설됐다. 분묘에서 분리된 사당의 기능이라 볼 수 있다. 장제전은 피라미드를 대신할 만큼 위엄과 신성함을 갖춘 건축으로 발전해 갔다. 그중 최고의 작품은 단연 셉수트(Hatshepsut) 장제전이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파라오에 오른 인물이며, 광대한 영토를 정복해 신왕국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군주이기도 하다. 장제전 건설은 파라오로서의 절대적 권위를 과시하는 프로젝트였음에 분명하다.

이 장제전은 거대하고 기묘한 암벽을 배경으로 세워졌다. 수직적 틈으로 분절된 암벽은 하늘로 치솟으며, 속세와 구별되는 피안의 세계를 상징한다. 장제전의 건물은 의외로 단순하다. 3단으로 이루어진 테라스를 열주들이 받치고 있는 구조다. 원경으로 바라보면 그 신령한 암벽 속으로 통하는 입구처럼 보인다. 그 중앙을 관통하며 오르는 경사로는 입구를 향한 길고 느릿한 길이다. 이것을 설계한 천재 건축가 세네무트(Senemut)는 여왕의 영혼이 이 램프를 통해 절벽 안의 사후세계로 향하는 장엄한 행렬을 그렸을 것이다.

요란한 장식과 거대한 건축적 장치를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원경으로 보면 마치 근대에 디자인한 것처럼 단순하고, 기하학적이기 때문이다. 이 건축이 무려 3500년 전의 것(B.C. 1458년)이라는 사실에 더욱 놀랄 것이다. 기암의 절벽이 주는 웅대한 스케일 감, 수직적 분절로 치솟는 강한 상승감, 수직적 지형과 수평적 건축의 강렬한 대비와 조화, 좌우 대칭의 정적 고요함과 경사로의 느릿한 속도감 등은 현대 디자인의 개념으로도 소름끼칠 만하다.

테라스는 석재기둥과 상인방(post & lintel system)으로 구축했다. 다주실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이집트 건축에서 기둥은 역학적 의미가 아니라 신성함의 상징이었다. 테라스의 돌기둥에는 오시리스(Osiris) 형상을 한 여왕의 상이 조각돼있다. 여왕은 기둥에 기대어 멀리 나일강의 푸른 물과 녹색 들판을 바라보고 있다. 나일강의 풍요와 생명의 녹색이 넓게 전개된다. 그들이 꿈꾸었던 오아시스, 낙원의 풍경이 아닌가. 여왕은 풍요로운 들판을 바라보며 다시 환생할 날을 기다렸을 듯하다. 건축은 장소가 반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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