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사태 등으로 정치혐오 심화
정치인들 민생은 뒷전 사익만 추구
정치 현수막 철거 ‘정자정야’ 해야

▲ 신면주 변호사

15년이 넘는 일이라 이미 기억이 희미하지만,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던 때가 있었다. 북한이 핵 개발을 노골화하기 전이라 평화교류와 통일의 기대를 안고 많은 사람들이 관광길에 올랐다. 70대의 부모님을 모시고 온정리에서 출발해 만상정, 귀면암, 천선대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 만물상을 들러보는 코스였던 것 같다. 고성을 지나 북한지역으로 지나가면서 차창 너머로 보이는 경계병들의 행색, 번호판을 단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니는 주민들의 모습과 주택, 금강산호텔의 잦은 정전, 아침 상차림 등을 보면서 북한은 아직 우리의 1960년대 정도의 생활상에 머물러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외금강이었음에도 상상 이상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던 중에 금강석의 절벽 면에 새겨진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칭송하는 거대한 붉은 글씨와 마주치는 순간 잠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 주민의 삶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보이는 붉은 정치구호 앞에서 어리둥절함은 곧 민족의 미래에 대한 절망감으로 각인되었다. 이후 금강산 관광도 중단되고 생업에 바쁘다 보니 잊혀진 기억이 되었는데 불편하게도 요즘 갑자기 그때의 느낌이 소환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도시의 요소요소에 걸린 저급한 정치 선전·선동, 인신공격, 자화자찬을 내용으로 하는 현수막을 마주치면서부터이다.

법률가의 감으로 저런 것 함부로 달 수 없는데 싶어 확인해보니 국회의원들 스스로가 ‘옥외광고물법’을 개정해 정당이나 정치인은 마음대로 현수막을 걸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원래 신고나 허가 없이 설치된 현수막은 해당 관청에서 철거해야 한다. 이 법의 개정으로 정치적 현안과 관련된 현수막은 허가나 신고 없이도 15일간을 자유롭게 게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의 특권을 줄이라는 국민의 목소리는 일회성 선거용이고 모름지기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국회의원들의 민낯이다. 오직 권력과 관직 사냥에만 몰두하는 저급한 정쟁. 국민 편 가르기 선동으로 정치혐오가 극에 달해 있는 마당에 도시를 정치구호로 물들이겠다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여론 조사로도 무당층이 30%를 넘어간다고 하지만 막상 술자리 분위기는 정치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할 정도이다. 널브러진 민생 위에 나부끼는 저급한 정치구호는 더운 날씨에 국민의 짜증 지수만 더 높이고 있다.

7월의 민생을 정치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국민의 눈높이로 한번 돌아보자. 후쿠시마의 오염 처리수가 방류되기도 전에 국민이 횟집에 발길을 끊게 만드는 신출한 선동 정치, 매년 큰물이 질 때마다 도심의 지하도와 빌라의 반 지하층 침수로 인명 피해가 속출했고, 며칠 전부터 호우주의보를 알리는 문자 메시지가 연일 휴대폰을 강타했음에도, 또 같은 인명 피해를 되풀이하고서는 기후변화 타령이나 하며 법적인 책임은 없다는 둥 면피에 급급한 지자체장들.

교육감 선거 때면 교육 현장도 정쟁의 도구로 삼아 진보니, 보수니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며 금방 공교육이 기사회생할 듯 떠들어 대지만, 사교육은 갈수록 극성을 부리고 학생이 선생을 폭행하는 일이 비일비재 해도 책임을 지고 직을 던지는 양심 있는 교육자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교육 현장. 동호회원들이 단체 산행을 가도 선발대가 현지의 숙박시설, 안전성 등을 점검함이 상식인데 전 세계의 수 만명 청소년들을 불러 놓고 현장에서 직접 텐트 한번 안 쳐본 것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새만금. 민망하고 답답한 민생의 현주소이다. 여기에 무엇을 더 얻겠다고 정치구호를 온 거리에 내 거는 것은 참으로 몰염치한 일이다.

공자는 노나라의 실력자인 계강자가 정치란 무엇이냐고 묻자 “정치는 올바름을 실행하는 것이요. 당신이 솔선한다면 누가 감히 올바르지 않겠습니까.(政者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라고 답했다. 백성을 치자(治者)의 권력 획득이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보다는 올바름을 실행해 백성이 기뻐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모든 정치 행위는 국민들의 행복추구권과 기본권을 극대화해 존엄한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데 귀결된다’는 현대 민주헌법의 정신과도 상통한다.

국민을 짜증나게 하는 정치 행위는 이미 정치가 아니다. 법률의 개정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거리의 흉물을 철거해 정자정야(政者正也· 나라를 바르게 한다) 하기를 부탁드린다.

신면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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