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숙 수필가

거기 강화도에 오층석탑이 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아주 멀다. 한참을 벼르다보니 그리움이 짙어져 뜨거운 여름, 두근대는 마음으로 달려간다.

여러 단의 석축을 쌓은 언덕 위에서 오층석탑이 제 몸을 반쯤 드러내고 인사를 건넨다. 오래 기다렸다고.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 마다 풍경이 조금씩 바뀐다. 숲 향기도 짙어진다. 탑이 완전한 모습을 보이자 아, 하고 짧게 숨을 토해낸다. 비어 있는 절터는 정갈하고 내려앉은 바람의 무게마저 삽상하다.

오층석탑은 파손되어 흩어져 있던 부재를 수습해 1960년에 다시 세웠다. 투박하다 못해 부자연스럽다. 그러니 힘을 빼고 묵연히 바라보아야 한다. 때론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것이 내 것인 양 정겹다. 춥고 외로운 시절을 살아온 흔적이 깊이 주름져 있기 때문이다.

장정리 오층석탑(사진)은 방형의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일반형 석탑으로 고려 후기의 작품이다. 봉은사지 탑이라고도 불린다. 3층 이상의 몸돌과 오층의 지붕돌, 상륜부가 없다. 몸돌이 빠지고 지붕돌 세 개가 포개진 모습이 애잔하다. 그마저 전각 모퉁이가 떨어져 나가 본 모습을 짐작하기 어렵다.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반짝이는 화강암을 끼워 넣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스러져간 봉은사의 아픈 기억도 남아 있는 오층석탑이 오롯이 감당해야 할 몫이니까.

봉은사는 개성에 있던 고려 국찰이다. 고종 19년(1232),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로 천도를 하면서 개성의 봉은사와 같은 이름의 사찰을 이곳에 세웠다. 매해 연등회를 개최할 만큼 중요한 곳이었으나 금당 자리도 건물지도 찾을 수 없다. 절터에 네모난 우물이 남아있다. 맑은 물이 찰랑한데 나뭇잎 예닐곱 연등처럼 흔들린다.

언덕을 내려오다 뒤를 돌아본다. 햇살 공양을 받고 있는 오층석탑이 올 거친 무명옷을 입은 현자 같다. 일찍이 탐진치를 내려놓은 자세다.

배혜숙 수필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