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역량 단적으로 보여준 해프닝
이번 새만금 잼버리 실패를 교훈 삼아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매뉴얼 만들어야

▲ 정준근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유쾌한 잔치, 즐거운 놀이’라는 뜻을 가진 잼버리(jamboree)가 불쾌하고 짜증나는 행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부는 막판에 K팝 공연을 통해 가까스로 분위기를 전환시킨 것을 강조하고 싶겠지만, 우리 국민들과 세계의 평가는 분명하다. 대 실패가 틀림없다. 잼버리 행사장의 변기를 손수 닦는 총리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이 모든 것을 대변하고도 남는다.

총리는 왜 자기 스스로 화장실을 청소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솔선수범일까, 아니면 보여주기식 행위일까. 아마도 실제로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직원들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같으면 대통령이 지시를 내리고 총리가 현장에 뜨면 아래 직원들이 한 술 더 떠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지금은 이런 시대가 아니다. 한 마디로 계서적 권위(hierarchical authority)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상관이 명령과 지시를 내린다고 해서 군소리 없이 이에 따르는 ‘고전적’ 관료는 이제 없다고 보아야 한다. 중앙과 지방정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중앙정부가 결정했다고 해서 지방정부가 그대로 따른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의 경우 그동안 상관이 지시한 것을 그대로 따르다가 법적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가거나 공직을 떠나는 경우가 흔히 나타났다. 게다가 박봉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정치의 과도한 간섭과 책임회피는 행정관료의 사기를 꺾어 놓았다. 이에 관료들은 스스로의 방어기제를 마련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의 지시인지 기록을 남기거나 역량을 선택적으로 발휘한다. 혹자는 현장 관료들의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강조한다. 국제행사이니 만큼 열의를 가지고 마치 자기 일처럼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료도 사람이다. 자기희생을 각오하고 괜히 먼저 나선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제는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지침이나 매뉴얼을 만들고 이에 의거해서 움직이도록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미국, 유럽 등 행정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들의 경우 불필요하게 보일 정도로 자세하고 정교한 지침들이 마련돼 있다. 그리고 이에 의거 수행되는 행정행위가 지속적으로 기록되고 보관된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규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상관의 구두명령이나 권위적 언사에 의해 업무가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규정과 지침에 의거해서 행해지고 책임도 이를 토대로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의 여러 나라들이 왜 그렇게 자세하고 분명한 지침과 룰을 만들어 놓고 있는지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의 경우에서도 보았지만, 사회적 재난이나 정책실패가 발생하면 대개 현장대응의 잘못으로 규정하고 일선 관료 위주로 책임을 묻고 처벌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실패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정책의 실패와 정책집행의 실패를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

이번 잼버리의 주요 실패요인인 부적절한 캠핑장의 선정, 구심점 없는 조직위원회의 구성 등은 모두 정책결정 사항이었다. 또 ‘새만금 잼버리지원법’에 따라 조직이 구성되고 예산이나 인력의 지원이 이뤄졌다. 따라서 법안의 내용이 적절했는지를 포함해, 잼버리를 위한 정책결정이 과연 합리적인 것이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만일 정책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것은 정책의 실패이며, 이에 대해서는 이를 결정한 주체들이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만일 정책의 집행과정에서 부정이나 부당한 측면이 있었다면 이는 정책집행의 실패이므로 당연히 집행 담당자들의 책임이다. 이런 구분 없이 국회를 비롯한 정책 결정자들이 자신들은 마치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며 일방적으로 집행자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총리의 화장실 청소는 정부의 역량과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해프닝이다. 이번에도 실패를 교훈으로 삼지 못하고 후안무치한 책임전가 논쟁만 되풀이 한다면, 앞으로도 이런 모습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정준근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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