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홍가 (주)쌈지조경소장·울산조경협회부회장

고정희 박사님의 식물적용학 수강생들과 함께 ‘장소의 혼’이라는 주제로 독일 정원을 답사 중이다. 첫날 베를린 인근 포츠담에 위치한 칼푀르스터 정원을 들렀다. 숙근초 정원의 선구자인 독일의 정원가 칼 푀르스터는 한 해를 초봄, 봄, 초여름, 한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 이렇게 일곱 계절로 구분했다. 자연 서식처를 참고해서 기본 구조를 잡고 황금률에 따라 숙근초들을 배치했다. 100년이 지나도록 아름다움을 간직한 정원은 숙근초에 대한 그의 철학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정원은 크게 6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선큰가든, 봄길, 자연정원, 가을정원, 테스트정원 등 6구역으로 돼 있다. 이후 사람들의 방문이 잦아지자 자연정원은 프라이빗한 가족 정원으로 재 조성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선큰가든(지하나 지하로 통하는 개방된 공간에 꾸민 정원)은 육종한 식물들을 어떻게 함께 모아 심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처음부터 전시 정원으로 조성했다. 집 앞 중앙부 연못을 중심으로 좌우 둘레로 숙근초들을 심었는데 처음에는 좌우대칭으로 식재를 했다가 자연 서식처를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식물 배치를 바꾸어 나갔다. 영국식 정형적인 화단과는 차별된 숙근초 화단은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자아내며 1년 내내 볼거리를 준다.

8월 끝자락의 칼푀르스터 정원은 풍성한 공간감으로 갖가지 꽃들이 어우러져 잠시 시간을 잊게 한다. 전시 정원은 평지가 아닌 단차를 두고 선큰돼 있어서 정원을 들어서는 이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봄길은 울창한 숲 사이 좁은 길을 따라 수선화 크로커스가 이른 봄을 알린다. 암석정원은 돌을 이용해 높낮이를 조절해서 낮고 높은 키의 숙근초들이 심어져 있어 방문객의 눈높이에서 자세히 관찰도 가능하다. 집 뒤편에 테스트정원은 현재 너서리로 운영되고 있다. 전시정원을 둘러본 후 나만의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이 직접 꽃을 고를 수 있도록 학명별로 체계적으로 분류해 놓았다. 벌이 좋아하는 식물, 색상 테마나 서식처 별로 샘플을 모아둔 코너는 식물 애호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숙근초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질 못한다는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일곱 계절이 모두 아름다운 정원. 눈 내리는 날 이 정원을 다시 거닐고 싶다. ‘장소의 혼’ 이라는 철학적 명제에 대한 깊은 사유는 두고두고 숙제로 남을 거 같다.

정홍가 (주)쌈지조경소장·울산조경협회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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