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 수필가
배혜숙 수필가

죽장리 오층석탑은 구미를 대표하는 문화재다. 그 높이가 10m에 이른다. 석탑을 건립할 당시, 선산 지역 불교의 힘이 오롯이 느껴진다. 무거운 돌을 포갬포갬 얹은 구조물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순한 백성들의 염원을 담아 쌓아 올린 화엄의 세계다. 100여 개가 넘는 석재의 결구 또한 부처님을 향한 신라인들의 간절한 기도였다.

죽장사 너른 마당을 차지하고 있는 탑은 기골이 장대하다. 우람한 크기나 굳건한 기상으로 보아 국보로 손색이 없다.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저절로 겸손해져 두 손을 모은다. 목을 한껏 뒤로 젖히고 탑을 올려다본다. 그 끝에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솟아오른 탑으로 인해 하늘 한 조각 툭 터져 버린다. 금빛 화살이 마구 쏟아져 내린다. 한동안 눈을 뜰 수 없다. 오층석탑은 그렇게 사방에 계시를 내려준다. 어리석은 생각이나 미혹에서 깨어나 막힘없이 당당해지라고. 일층 몸돌 남쪽 면에 마련된 감실에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감실 안으로 햇살이 스며들자 부처님의 몸에서 황금빛이 부챗살처럼 퍼진다.

죽장리 오층석탑은 지붕돌 아래와 윗면에 모두 층급을 두었다. 즉 계단 모양이다. 장중하나 부드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붕돌이 모전 석탑의 형식을 취한 덕분이다. 이렇듯 세련되고 조형미를 갖춘 탑도 천년의 세월을 제 속으로 다 받아내느라 헐거워졌다. 돌짬 사이로 옹이가 박히고 검푸른 이끼가 돋아난다. 기단의 덮개돌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고 얼룩이 희뜩희뜩 자리를 잡았다. 홀로 외로움을 견뎌낸 흔적이다. 몇 송이 성글게 핀 코스모스 곁에서 나도 팽팽하게 조인 마음을 풀고 멀리 금오산을 바라본다.

훤훤장부 품새를 지닌 탑하나 가을 한복판에 꿋꿋하다. 절 마당으로 젊은이 몇이 들어서더니 기운차게 탑을 향한다. 그들의 싱그러운 소망을 품어 오늘도 오층석탑은 키가 자란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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