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지구의 온도가 계속 상승하거나 다른 여러 이유로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삶은 어떻게 변할까. 대재앙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생을 이어가야 할까. ‘더스트’로 인해 폐허가 된 지구와 그 이후를 다룬 김초엽의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을 읽으며 떠올린 것이 시드볼트이다.

시드볼트(seed vault)는 자연재해나 핵전쟁 같은 대재앙이 발생해 식물이 사라질 때를 대비해 종자를 영구 저장하는 시설을 말한다. 생물의 다양성 유지를 위해 운영되는 곳으로 보관 중인 종자는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만 반출이 가능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서 인정한 국제종자보관소는 세계에 단 두 곳이다. 하나는 북극의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시드볼트로, 작물 종자를 보관한다. 다른 하나는 경북 봉화에 있는 백두대간수목원 글로벌 시드볼트이다.

▲ 국립 백두대간수목원 글로벌 시드볼트.
▲ 국립 백두대간수목원 글로벌 시드볼트.

백두대간 시드볼트는 야생식물 종자를 다룬다. 현재는 국내외 야생식물 종자 5000여 종, 23만여 점이 저장되어 있다. 씨앗을 휴면상태로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지하 터널형 시설에 1년 내내 항온항습의 상태를 유지한다. 보관된 씨앗은 우리나라 야산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종자를 비롯해 700년 만에 꽃을 피운 ‘아라홍련’의 후계 씨앗과 550년 수령의 철쭉, 멸종 위기에 놓인 구상나무가 포함되어 있다. 그 외에 전 세계 국가 및 기관에서 위탁받은 종자를 무상으로 영구보존,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재난에 대비한다.

야생 종자를 보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야생식물은 작물의 모태이며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적응력이 우수하다. 작물 종자의 유전적 다양성이 획일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원종에 대한 연구는 파괴된 생태계 복원의 열쇠가 될 것이다. 현재 연구 속도보다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 종자의 보관은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멸종 위기의 식물들이 발생하고 있다.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이 아니고서는 반출이 불가하지만, 스발바르 시드볼트에서는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종자가 반출된 일이 있다.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다. <지구 끝의 온실>과 같은 상황이 온다면 시드볼트는 노아의 방주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새롭게 삶의 터를 닦아야 하는 때, 시드볼트에 저장된 종자들이 40일간의 대홍수 이후 비둘기가 물어온 올리브 가지처럼 새 삶을 견인하지 않을까. 인류의 미래를 준비하는,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 내는 초록 지문을 응원한다.

송시내 나무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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