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중 첫 절기로 ‘봄의 시작’
온난화로 오차·적합성이 떨어지지만
봄에 대한 기대감은 예나 변함없어

▲ 남호수 동서대학교 교학부총장

대한(大寒)의 동장군은 물러갔는가. 참으로 매서운 한겨울 추위도 마치 한순간 지나간 듯하다. 해마다 양력으로 2월 3~5일경에 입춘이 들어선다. 입춘은 24절기의 시작으로 봄이 들어서는 절기를 나타내며,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면서 태양의 황경(黃經)이 315도에 드는 때를 가리킨다. 이때 태양의 직선이 적위 0도를 지나게 되어 남반구에서는 가을이, 북반구에서는 봄이 시작된다. 입춘은 음력으로 주로 정월에 드는데, 입춘에는 동풍이 불고, 얼음이 풀리며 동면하던 벌레들이 깨어난다고 한다. 입춘은 24절기 가운데 첫 절기로 이날부터 봄이 시작된다. 그래서 이날을 특별히 기리고 있는데, 옛날에는 다가오는 1년 동안 대길(大吉), 다경(多慶)하기를 기원하는 갖가지 의례를 베푸는 풍속이 있었으나, 근래에는 더러 입춘축만 붙이는 가정이 있을 뿐, 그 절일(節日)로서는 기능은 많이 사라지고 있다.

24절기의 설계는 태양의 황경이 0도인 날을 춘분으로 하고, 이후 15도 간격으로 절기를 24개로 나누었는데, 각 24등분한 절기마다 계절과 기후의 변화를 나타내는 특징으로 명칭을 부여해 둔 기후변화 체계라고 볼 수 있겠다. 예컨대 태양이 0도 지점을 지나면 춘분(春分), 15도 지점을 지나면 청명(晴明)이라 하는 것이다. 이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 그리고 기울어진 자전축이 만들어내는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 절기가 매우 중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였다.

입춘에는 아직 추운 겨울이지만 햇살이 강해지고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동지가 지난 후 태양이 다시 북반구 쪽으로 이동하기에 북반구 쪽의 지구가 서서히 달구어지는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입춘이 지나고도 한 달여가 지나야 비로소 봄이 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이런 24절기는 고려말 이후 사용되어 온 기후, 계절 지표이지만, 본래 고대 중국 황하강 주변 화북지방을 기준으로 정한 것이기에 우리나라 실정에 딱히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실제 늦겨울에 해당하는 2월4일경에 기온은 영하로 떨어지기 일쑤다. 그래선지 우리 조상들은 입춘의 추위를 뜻하는 속담으로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고 하거나, 한국에서는 가장 큰 추위를 뜻하는 ‘대한’보다 작은 추위를 뜻하는 ‘소한’이 더 춥기에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 등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절기의 과학도 기후변화로 절기 기준과의 편차가 커지고, 따라서 심지어 계절 주기까지 흔들리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24절기가 새삼스럽기조차 하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한반도의 여름은 점점 길어지고, 겨울은 더욱 짧아지고 있음은 이미 체감하고 있다. 이러다간 봄(3월부터 5월까지)과 같이 3개월씩 구분해온 사계절을 다시 설계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통계로 살펴보면 최근 30년간의 기후변화는 연평균 기온의 1.6℃ 상승, 연평균 강수량의 135.4㎜ 증가 등으로 여름은 20여 일 늘어나고, 겨울은 22일 짧아지는가 하면, 한파는 줄어들었지만, 열대야와 폭염은 늘어나고 있는 등 지구온난화의 특징이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아연히 입춘의 비(非)과학을 짚어보면 첫째로 절기가 약 2000년 전에 중국 주나라 때 만들어진 계절 지표여서 현재의 기후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면이 있는가 하면, 둘째로 당시 24절기의 기준도 중국 화북지역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후와 차이가 있는 측면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최근 100년간 한반도의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24절기에 오차 또는 적합성이 많이 떨어진 측면이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 혹독한 추위가 물러가고 맞이하는 입춘, 그 봄이 오는 설렘과 뭔가 새롭게 크게 길함, 그리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가득한 채로 맞이하고 싶음에랴.

남호수 동서대학교 교학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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