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농단의혹 항소·상고심 촉각
사법권 독립은 자유민주주의 핵심 가치
유무죄 떠나 사법권 독립에 치명적 손상
이스라엘 당국이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공격계획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이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의 한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부패 재판과 관련해 방탄용 입법으로 사법부 무력화를 시도했고 그에 대한 반대시위가 계속되는 혼란속에서 하마스가 기습했다. 국민 76%가 총리 퇴진을 원한다는 여론조사가 있는 가운데 정부의 정책 결정을 사법심사로 뒤집을 수 있는 대법원의 권한을 폐지하려던 네타냐후의 사법부 개정 기본법은 대법원에서 무효화됐다. 민주국가에서도 권력 분립과 사법권 독립은 늘 긴장속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재판 거래 등 사법농단 의혹 사건의 제1심 판결이 있었다. 기소 혐의가 무려 47가지인데 모두 무죄였다. 비록 1심이지만 수십개 공소사실에 대해 일부 무죄도 아닌 전부 무죄는 매우 이례적이다. 구속까지 해 기소한 사안이니 더욱 충격적이다. 공소는 사법부 수장을 정점으로 법원행정처에서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보복적 인사를 하고,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박근혜 정부와 일제 강제 징용사건의 재판 거래 등을 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직권남용 혐의였다. 1심은 일부 고위급 실무자의 일탈이 있었을 뿐 사법부 수뇌부의 공모 관계를 인정하기 어렵고, 재판 개입은 법원행정처 판사들에게 해당 권한이 없다고 판단했다.
1심 판결에 대해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무리하게 사법부 내부 일을 검찰에 넘겨 형사사건화했다는 비난이 거세다. 애초 사법부의 자체적인 세 차례 진상조사는 ‘특정 법관들의 성향 등을 파악한 것이 재판 독립을 훼손하려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재판 과정에 법원행정처가 관여한 사례는 없어 직권남용 등 범죄 혐의는 인정되지 않아 형사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김 전 원장의 ‘관련자 고발 고려’ 및 문 전 대통령의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는 발언 등에 이어 김 전 원장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함으로써 대대적 수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검찰의 과잉 수사와 무리한 기소가 가져온 결과라든지, 직권남용을 너무 좁게 해석했다는 법리적 문제와 아울러 1심 법원의 ‘제식구 감싸기’ 판결이라는 비판이 있는 가운데 검찰은 항소했다.
법적 진실은 항소 및 상고심에서 가려질 것이다. 누가 농단을 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심판도 이어질 것이다. 만약 1심 판결대로 무죄라면 형사사건으로 만든 사람들이 사법에 대한 농단을 한 것이고, 결론이 달라진다면 소추된 사법부 수뇌부가 사법 농단을 한 것이 될 것이다. 전부 무죄는 검찰권 남용이라는 법적 정치적 문제를 수면위에 떠오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무죄를 떠나 사법권 독립은 치명적 손상을 입었다. 사건의 근저에는 ‘오도된 사법적극주의, 법원행정처 중심의 엘리트주의, 국민정서와 유리된 상고법원 설치의 추진, 헌법재판소와의 불필요한 우위 경쟁’ 등 당시 사법부 내부의 부적절한 처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권력 분립과 사법권 독립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다. 사법권 행사에 있어, 역사 발전과 진보적인 사회정책에 기여해야 한다는 적극적 사고와 입법·행정의 의사결정은 국민의 법의식이나 정서에 근본적으로 배치되지 않는다면 존중돼야 하고 그에 관한 가치판단을 자제하려는 소극적 태도가 대립한다. 어떤 사고와 태도가 합당한지는 사법철학적 논쟁의 대상이다. 사법부가 법안을 만들어 입법부에 주문하는 청부 입법이나 입법부에 법관을 파견해 입법에 관여하거나 행정부와 입법부의 동향을 파악하는 등의 세속적 태도는 권력 분립에 어긋나고 사법적극주의를 곡해한 것이다. 권력은 비대화하려는 속성이 있다.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그렇다. 사법권이나 사법부 구성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법이 독립을 지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보루가 되려면 사법권 스스로 자제와 공정, 성숙과 겸손의 덕목을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박기준 변호사 제55대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